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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알몸투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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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알몸투시기

입력
2010.01.29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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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선 발견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인류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훨씬 크다. 20세기 과학사를 기술할 때도 1900년보다는 통상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1885년을 기점으로 삼고, 근ㆍ현대과학을 가르는 분기점을 이 때로 잡기도 한다. 뢴트겐은 부지런히 논문을 냈지만 별다른 주목을 못 받던 무명의 과학자였다. 그러다 50세 때 밀폐된 벽을 뚫고 나오는 이상한 빛의 발견으로 단숨에 세계 최고 과학자 반열에 올랐다. 뢴트겐이 아내의 손에 이 빛을 쪼여 얻어낸 뼈 사진은 최초의 X-선 사진이 됐다. 1901년 첫 노벨 물리학상도 그에게 돌아갔다.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전신탐색기를 우리 정부도 올 상반기에 도입, 인천을 비롯한 주요 국제공항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탐색기 원리는 뢴트겐이 한 것과 마찬가지로 전자기파를 쏘아 투과되지 않고 반사되는 물체의 형상을 얻는 방식. 밀리미터파와 X-선을 이용하는 두 종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어느 것이든 뼈까지 드러내는 의료용 X-선보다는 투과력이 낮다. 이 때문에 도리어 인체 형상과 인체 외부에 부착한 이물질들의 모습은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알몸투시기'라는 원색적 이름으로 더 많이 지칭되는 이유다.

▦인간의 심리란 게 원래 자신은 감추되, 남에 대해선 알고 싶은 것이다. 그러려면 방법은 두 가지다. 상대방의 속내나 일상을 낱낱이 꿰뚫어보는 투시력을 갖든지, 아니면 반대로 자신이 남의 눈에 띄지 않는 투명인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투시 능력자와 투명인간은 동전의 앞 뒷면일 뿐 결국은 같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X-선의 발견을 통한 투시(透視)마법의 현실화는 일반 대중에게도 경이로운 신세계의 도래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천재 SF작가 H.G.웰즈의 소설 <투명인간> 이 뢴트겐의 발견 뒤 2년 만에 나온 것도 우연이 아닐 법하다.

▦알몸투시기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논쟁이 뜨겁지만 사실 투시ㆍ투명능력의 깊숙한 본질은 권력이다. 플라톤의 <국가론> 속 목동 기게스가 투명반지를 얻은 뒤 무서운 권력자가 되어가고, 웰즈의 투명인간도 그 힘을 이용해 온갖 악행을 일삼다가 파멸해가지 않던가. 심지어 영화 <반지의 제왕> 에 나오는 절대반지의 무한한 힘의 근원도 투명능력이다. 보이지 않는 대상에 속속들이 보여지는 두려움, 이는 정확히 권력과 대중의 관계를 표상하는 것이다. 글쎄, 그러고 보면 알몸투시기는 보다 심각한 철학적 차원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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