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선 발견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인류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훨씬 크다. 20세기 과학사를 기술할 때도 1900년보다는 통상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1885년을 기점으로 삼고, 근ㆍ현대과학을 가르는 분기점을 이 때로 잡기도 한다. 뢴트겐은 부지런히 논문을 냈지만 별다른 주목을 못 받던 무명의 과학자였다. 그러다 50세 때 밀폐된 벽을 뚫고 나오는 이상한 빛의 발견으로 단숨에 세계 최고 과학자 반열에 올랐다. 뢴트겐이 아내의 손에 이 빛을 쪼여 얻어낸 뼈 사진은 최초의 X-선 사진이 됐다. 1901년 첫 노벨 물리학상도 그에게 돌아갔다.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전신탐색기를 우리 정부도 올 상반기에 도입, 인천을 비롯한 주요 국제공항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탐색기 원리는 뢴트겐이 한 것과 마찬가지로 전자기파를 쏘아 투과되지 않고 반사되는 물체의 형상을 얻는 방식. 밀리미터파와 X-선을 이용하는 두 종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어느 것이든 뼈까지 드러내는 의료용 X-선보다는 투과력이 낮다. 이 때문에 도리어 인체 형상과 인체 외부에 부착한 이물질들의 모습은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알몸투시기'라는 원색적 이름으로 더 많이 지칭되는 이유다.
▦인간의 심리란 게 원래 자신은 감추되, 남에 대해선 알고 싶은 것이다. 그러려면 방법은 두 가지다. 상대방의 속내나 일상을 낱낱이 꿰뚫어보는 투시력을 갖든지, 아니면 반대로 자신이 남의 눈에 띄지 않는 투명인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투시 능력자와 투명인간은 동전의 앞 뒷면일 뿐 결국은 같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X-선의 발견을 통한 투시(透視)마법의 현실화는 일반 대중에게도 경이로운 신세계의 도래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천재 SF작가 H.G.웰즈의 소설 <투명인간> 이 뢴트겐의 발견 뒤 2년 만에 나온 것도 우연이 아닐 법하다. 투명인간>
▦알몸투시기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논쟁이 뜨겁지만 사실 투시ㆍ투명능력의 깊숙한 본질은 권력이다. 플라톤의 <국가론> 속 목동 기게스가 투명반지를 얻은 뒤 무서운 권력자가 되어가고, 웰즈의 투명인간도 그 힘을 이용해 온갖 악행을 일삼다가 파멸해가지 않던가. 심지어 영화 <반지의 제왕> 에 나오는 절대반지의 무한한 힘의 근원도 투명능력이다. 보이지 않는 대상에 속속들이 보여지는 두려움, 이는 정확히 권력과 대중의 관계를 표상하는 것이다. 글쎄, 그러고 보면 알몸투시기는 보다 심각한 철학적 차원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반지의> 국가론>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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