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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지중해+중동 오묘한 맛의 결합 '인터내셔널' 레바논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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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지중해+중동 오묘한 맛의 결합 '인터내셔널' 레바논 요리

입력
2010.01.29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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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어떻습니까?"답변을 기다리는 프레데릭 네프 셰프의 눈빛을 보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난생 처음 접한 생소한 맛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순간적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굿!"이라고 대답은 했다.

셰프가 잠시 자리를 뜬 뒤 입안에서 맴도는 맛과 향을 곰곰이 되새겨봤다. '굿'이라는 짧은 단어 하나에 다 담지 못한 갖가지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알싸하면서 고소했다. 시큼하기도 하고 텁텁하기도 했다.

밋밋한 듯 하면서도 희한하게 싱겁지는 않았다. 20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JW매리어트호텔에서 먹어본 레바논 요리는 한 마디로 오묘했다.

중동의 지중해 요리

레바논 요리의 애피타이저는 메제(mezze)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쟁반에 작고 둥근 그릇을 많게는 10여개 놓고 그릇마다 다른 샐러드를 담아낸다. 레바논 현지에서 거의 매일 먹는다는 대표적인 샐러드는 타불리(tabbouleh).

우리 말로 치면 파슬리 샐러드다. 파슬리를 토마토와 함께 거칠게 다져 레몬즙과 소금으로 촉촉하게 양념한다. 한겨울에도 10℃ 안팎인 따뜻한 기후 때문에 레바논에선 가지와 토마토 당근 오이 양상추로 만드는 샐러드나 시원한 채소요리를 자주 먹는다.

레바논 요리 뷔페에 차려진 갖가지 샐러드를 조금씩 떠 가져가려는데, 셰프가 잠깐 기다리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리곤 샐러드 위에 뭔가를 뿌려줬다. 올리브오일이다. 네프 셰프는 "레바논에서는 지금도 공장이 아니라 소규모 농가에서 직접 짜낸 올리브오일을 쓴다"며 "샐러드에 뿌리면 맛이 한층 부드러워진다"고 설명했다.

올리브오일 하면 보통 지중해 요리를 떠올린다. 레바논은 중동 문화권이지만 지리적으로 지중해에 접해 있어 요리는 지중해권 나라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올리브오일과 마늘 허브를 즐겨 사용하는 걸 보니 이탈리아 요리와도 닮았다.

레바논식 쌈, 샤와르마

프랑스인인 네프 셰프의 부인은 레바논 출신 화가다. 셰프가 요리를 배웠던 레바논 현지 호텔에서 처음 만났단다. 이날 자리를 함께한 네프 부부는 레바논 특유의 요리 샤와르마(shawarma)를 권했다. 얇게 자른 쇠고기나 양고기를 양념해 하루 동안 재운 다음 높이 쌓아 올린 채 살살 돌려가며 굽는다. 레바논식 케밥(터키나 인도식 구운 고기)인 셈이다.

셰프가 고기를 뚝뚝 잘라 채소와 함께 후브스(khubz)에 싸줬다. 후브스는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 구운 것. 먹는 방법은 멕시코식 파히타와 비슷하지만 맛은 전혀 달랐다. 매콤하고 화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지는 파히타에 비해 샤와르마는 고기의 원래 맛과 질감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양념에 넣는 레바논의 허브나 향신료는 인도나 지중해의 다른 나라에서 쓰는 것과 달리 매운 맛이나 강한 향이 훨씬 적다. 인도식 커리나 한국식 후추에 길들여진 입맛이라면 레바논 요리가 싱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대신 레바논 사람들은 땅콩이나 피스타치오 같은 견과류의 고소한 맛을 좋아한다. 가정집에서도 쌀에 견과류와 허브를 넣고 종종 볶아 먹곤 한다. 레바논의 쌀은 다른 유럽 나라들의 쌀처럼 모양이 길고 찰기가 거의 없다. 입안에서 살살 부서지는 고소한 볶음밥은 그야말로 이국적이다.

시큼한 시금치 파이

시금치 파타예르(fatayer)와 라미 바지니(lahmeh bajine)를 처음엔 만두인 줄 알았다. 셰프는 찌지 않고 오븐에 굽기 때문에 만두보단 파이에 가깝다고 했다. 시금치 파타예르를 씹다가 우리 음식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시큼함에 살짝 놀랐다. 시금치와 양파를 밀가루 반죽에 싸기 전 레몬즙에 볶아서 그렇단다. 레몬즙으로 향을 돋우는 건 레바논 요리에서 많이 쓰이는 방식이다. 라미 바지니는 시금치 대신 쇠고기나 양고기를 넣는다.

네프 부부는 레바논 음식의 전체적인 특징을 '인터내셔널'이라고 표현했다. 레바논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인구가 대략 절반씩이다. 종교는 다르지만 식습관이나 식재료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이슬람교도는 종교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기독교도 역시 구하기 쉽지 않고 비싸니 잘 찾지 않는다.

네프 셰프는 "지리적으로 동서양이 만나는 입지에서 잦은 전쟁과 식민지 시절을 거쳐 여러 나라 요리의 특색이 혼합돼 있다"며 "이것이 누구나 무난하게 레바논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JW매리어트호텔 매리어트카페의 레바논 요리 뷔페는 매주 수요일 저녁에 열린다. (02)6282-6731

■ 아니스향케이크 후식으로 즐겨

레바논식 푸딩인 모할라비(mohalabieh)에선 장미향이 난다. 장미를 증류해 얻은 향 성분이 들어 있는 로즈워터를 넣기 때문이다.

밀가루나 녹말 대신 쌀가루를 쓰는 것도 특징이다. 아쉽게도 JW매리어트호텔의 레바논 요리 뷔페에서는 정통 모할라비는 먹어볼 수 없다.

로즈워터를 구할 수 없어 대신 아몬드가 들어갔다. 고소한 향이 낯설지 않은 한국식 모할라비다.

레바논과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같은 지중해 주변 나라가 전통술을 만들 때 공통적으로 쓰는 허브가 있다. 바로 아니스(anise). 잎과 씨가 시원하고 화한 향을 낸다. 레바논 전통술 아락(arak)은 아니스의 씨와 포도로 만든다. 알코올도수는 약 40도로 높다.

아니스로 만든 케이크(sfouf)도 레바논에서 즐겨 먹는다. 이 케이크의 노란 빛깔은 심황가루 때문이다. 인도 커리에 넣는 강황가루와 비슷하지만 매운 맛은 나지 않는다. 덕분에 이 케이크를 베어 물면 아니스 고유의 향이 그대로 살아난다. 레바논 사람들은 특히 케이크를 좋아한단다. 후식과 오후 티타임에 거의 매일 먹는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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