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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착같이 모아 아낌없이… 기부 황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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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착같이 모아 아낌없이… 기부 황제들

입력
2010.01.29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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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주는 것에 더 행복을 느꼈다. 어렵사리 모은 억대의 자금을 흔쾌히 사회에 내놓은 그들. 서로 살아온 배경과 목표는 달랐지만 나눔이 세상을 밝게 한다는 믿음은 그들의 공통분모였다. 바로 기부 DNA로 무장한 사람들이었다.

28일 서울 정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강당에서 열린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 첫 모임 행사장. 전국 각지의 기부 천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아너소사이어티란 1984년 미국에서 설립된 토크빌소사이어티(고액 기부자 모임)처럼 사회 지도층이 나눔 봉사에 솔선수범하자는 취지에 마련한 모임. 2007년 12월 출범했고 대상은 1억원 이상의 고액 기부자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지향하는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은 총 23명. 몇몇 유명인을 빼고는 대부분이 평범한 자수성가형 리더였다. 잘 사는 사람의 화려함을 이들에게서 발견하긴 어려웠다.

아너소사이어티 첫 가입자인 동시에 최고령자인 남한봉(69) 유닉스코리아 회장은 하반신 마비의 장애인이다. 63년 군복무 중 타고 가던 트럭이 50m 절벽 아래로 구르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그 후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살아난 게 기적일 정도. 덤으로 사는 인생, 악착같이 모았다. 1년에 양복 두 벌로 살았고, 코가 헤어진 구두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사장실엔 그 흔한 소파도 없다. "늦기 전에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0대 경제 대국이지만 행복지수는 바닥권에 있지 않습니까."불편한 몸 때문에 행사 내내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지만 누구보다 표정이 밝았다.

2억원을 내놓은 류시문 한맥도시개발 회장도 몸이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 동네 뒷산에서 넘어져 다친 다리는 수술을 제때 못해 평생 장애로 남았다. 영양 실조와 감기, 결핵 등 질병을 달고 다녔던 바람에 양쪽 귀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농사나 지으라는 부모님을 설득,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해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로마 1,000년 역사는 전쟁에 먼저 나가고, 국가가 어려울 때 재산을 내놓은 귀족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우리도 더 많은 사람들이 기부에 동참했으면 합니다." 그는 아너소사이어티와 별개로 주로 장애인 시설과 무의탁 노인 시설 등에도 억대의 기부를 꾸준히 해 오고 있다.

어렸을 적 배고픔에 잠 못 이뤘던 우재혁 경북타일 대표는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첫 가입한 회원이다. 껌 팔이, 신문 배달, 넝마주이 등 안 해 본 일이 없던 우 대표는 사회에 나와 30년간 타일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 그는 "제가 힘들었을 때 너무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이제 그걸 조금 되돌려는 주는 정도"라고 겸손해 했다.

오청(45) ㈜쿠드 신선설농탕 대표는 방송인 현영(34)과 올림픽 축구대표 감독 홍명보(41) 다음으로 최연소 멤버다. 아버지가 해 오던 가업(설렁탕 식당)을 이어받아 한식 대표 프렌차이즈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다른 일을 하라는 어머니의 뜻을 거슬렀지만 오히려 행복하다는 오 대표. "기부는 700여명의 직원과 식당을 찾아 준 고객 덕분입니다." 그는 아너소사이어티 활동 외에 설렁탕 기부 활동도 펴고 있다. 작년에 사랑의밥차란 이름으로 2만여명에게 설렁탕 무료 식사를 제공했고, 올해도 식사를 거르는 노인을 상대로 음식 나눔 행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자수성가 스타일이 대부분이지만 재벌 오너도 당당히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2009년 3월 포브스 아시아판이 한국 기부 영웅 4명 중 하나로 선정한 최신원 SKC 회장은 고 최종건 SK 회장의 차남이다.

재벌 오너들이 적지 않게 기부하는 게 사실이지만 최 회장처럼 개인 자격으로 기부 활동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는 작년 11월까지 이름 공개를 꺼렸을 정도로 묵묵한 실천을 좋아했고, 이날 모임에도 대리인만 보냈다.

가장 기부 금액이 큰 멤버는 홍명보.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 재단을 설립하기도 한 홍 감독은 2005년 2억원을 시작으로 총 8억원을 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전체 회원 중 최연소자인 현영은 2006년 3월 사랑의열매 홍보대사로 위촉된 후 각종 봉사 활동에 참석하다가 지난달 아너소사이어티에 이름을 올렸다.

행사를 주관한 윤병철 공동모금회장은 "사회가 선진화하려면 이제는 나누는 문화가 제대로 자리잡아야 한다"며 "이번 첫 모임이 성숙한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데 큰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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