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다. 정부가 11일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한 뒤 아직까지 당내 논의를 시작하기는커녕 논의 틀조차 만들지 못했다.
세종시 수정에 반대하는 친박계는 똘똘 뭉쳐 요지부동하고 있고, 친이계는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집권당으로서 정부가 내놓는 세종시 법안을 처리해야 할 책무를 갖고 있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당내 논의도 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또 여당이 세종시 문제에 발목이 잡혀 민생 문제를 등한시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도 커지고 있다.
친박계의 결속력은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대구지역 친박계 의원들은 정운찬 총리가 27일 주재한 대구ㆍ경북 의원 초청 오찬을 보이콧했다. 2월3일 열리는 총리 초청 부산 지역 의원 오찬 모임에도 친박계 의원들이 불참할 가능성이 있다. 한때 친박계 중진들이 타협안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박근혜 전 대표가 원안 고수론을 강력히 제기한 뒤에는 다른 목소리들이 사라지고 있다.
박 전 대표는 28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서강발전기금 모금 캠페인' 에 참석하기 직전 기자들을 만나 "달라질 게 없다. 세종시법은 수도권 과밀 해소와 지방 균형 발전이라는 원래 취지에 맞게 가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세종시 논란에서 친박계의 '힘'은 결정적이다. 친박계가 반대하면 세종시 수정 추진 법안이 국회 상임위에서 통과될 수 없다. 관련 법안을 다룰 국토해양위와 기획재정위 등의 의석 분포를 보면 친박계와 야당 의원들을 합한 숫자가 친이계 등 세종시 수정안 찬성 의원들보다 많기 때문이다. 국회 본회의에서도 친박계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반대표를 던지면 법안은 부결된다.
또 친이계는 "4월 국회 전에 반드시 세종시 당론을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친박계가 반대하면 당론 변경이 여의치 않다. 당헌당규는 '당론을 바꾸려면 전체 의원의 3분의2가 찬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한나라당 전체 의원 169명 중 친박계가 50~60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친이계는 한나라당 의원 중 3분의2를 세종시 수정안 찬성파로 확보하는 것을 1차 전략으로 세웠다. 한 핵심 의원은 "친박계 중에서도 수정안에 반대하는 의원은 40여명이기 때문에 당론 변경이 가능하다"며 "당내에서 3분의2를 확보하면 친박계가 끝까지 반대할 명분이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남경필 이한구 의원 등 중도파 중진은 세종시 수정 법안에 대한 표결과 관련 당론이 아닌 소신에 따라 투표하는 '크로스보팅'(교차투표)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에 친이계는 "검토 대상"이라는 입장인 반면 친박계는 "논의 대상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최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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