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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뉴욕컬렉션 참가 디자이너 박춘무' 쉰여섯, 그녀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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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뉴욕컬렉션 참가 디자이너 박춘무' 쉰여섯, 그녀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입력
2010.01.29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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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내 글로벌브랜드로 키울 겁니다. 느낌이 좋아요."

디자이너 박춘무씨가 내달 13일 첫 뉴욕컬렉션 데뷔무대를 갖는다. 본격적인 사업을 위해 이달 초에는 뉴욕에 현지법인도 세웠다. 쉰 여섯의 적지 않은 나이에 해외진출이라니 의외다 싶은 시각, 본인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디자이너는 나이 대신 옷으로 말한다. "연습은 충분히 했다"는 그는 "이제 도약할 일만 남았다"며 활짝 웃었다.

7년만의 외출

27일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주)데무 본사. 4평 남짓한 오너 디자이너의 집무실은 뉴욕컬렉션에 내놓을 디자인 스케치와 스와치(소재샘플), 막 완성된 옷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북새통 한가운데서 박씨는 "원래 무신경한 편인데 이번엔 좀 다르네요. 입술이 부르튼 게 낳질 않아"하면서도 활기가 넘쳤다. 해외 컬렉션 참가는 2002년 CJ홈쇼핑의 후원으로 파리컬렉션에 3회 참가한 이후 꼭 7년만이다.

"당시 파리에 5명이 같이 참가했는데 그 중에서 우영미씨만 살아남고 다 중도포기 했어요. 저도 파리컬렉션에 신경 쓰느라 회사가 부도위기에 몰린 걸 뒤늦게 알고 철수했는데 한 2년 지나니 싹 잊혀지데요. 국내 사업은 정상궤도를 회복했지만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에 회의를 느끼던 시절이었지요."

2008년 파리컬렉션 재진출을 시도했지만 금융위기가 다시 발목을 잡았다. 그러다 해외 PR대행사로부터 뉴욕이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라는 추천을 받았다. 마침 문화관광부가 한국패션의 글로벌화를 목표로 올해 처음 실시하는 뉴욕패션문화쇼룸 참가 디자이너로 선정됐다. 세계 패션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가 오프닝파티를 공식 후원하는 행사, 그만큼 현지 패션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행사에 주인공으로 참가하는 건 해외 진출에 또 하나의 청신호였다.

늦깎이 인생, 동물적인 패션본능은 나의 힘

"나는 맨날 늦었어요. 학교도 늦게 갔고 데뷔도 늦었고 파리 프레타포르테 전시회도 40세가 돼 처음 갔으니까요. 그래서 늦는 게 두렵기보다 정말 잘 할 수 있을 때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박씨가 이끌고 있는 여성캐릭터브랜드 '데무'는 부침이 심한 국내 패션업계서는 드물게 22년째 장수하고 있다. 아방가르드 디자인으로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데무스럽다'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킨 데무와 세컨드브랜드 '디데무'의 매장은 전국 70개를 헤아린다. 장수의 비결은 젊은 시절 거의 10년에 걸쳐 남대문시장에서 갈고 닦은 도소매의 노하우에서 나온다.

화가를 꿈꿨지만 고등학교 시절 아동복을 하던 부친의 사업이 폭삭 망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양품점을 시작한 것이 옷과의 첫 인연이었다. 20세에 양품점 여사장이 됐고 한때 남대문시장에서는 '돈을 밟고 살았다'고 할만큼 히트작 제조기로 명성을 날렸다. 기성복 시장이 빅뱅을 시작한 1970년대 후반 잘 나가던 패션전문점 빌리지와 바우하우스의 최고 인기상품이 전부 그의 작품이었다.

옷장사에서 패션디자이너로 인생을 바꾼 것은 한창 승승장구 하던 어느날 카키색 바지를 입은 동료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다가 불현듯 '내 미래가 바로 저 모습'이라는 충격적인 깨달음을 얻고 나서다. "아직도 제 앞을 지나가는 그 모습이 눈에 선해요. 돈은 벌었지만 그저 시장아줌마에 불과한…." 그날 바로 사업을 접을 결심을 하고 국제복장학원연구원에 등록했다. 패션디자이너 박춘무의 탄생이다.

세계는 넓다, 느낌 있는 옷으로 승부한다

박씨는 너무 정상적인 것은 재미가 없다고 말한다. 예쁜 것보다 멋진 것을 좋아한다. 짧은 머리 여자와 긴 머리 남자에 더 끌린다. 한마디로 삐딱한 걸 좋아한다.

"옷은 느낌으로 입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입어야 한다는 정형화된 규칙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한국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할 생각은 없다. 9ㆍ11사태 직후 철수했지만 미국 뉴욕의 롤리타지역에 5년 동안 단독매장을 열고 현지영업을 한 경험에 비춰볼 때 동양적인 감성은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옷에 담긴다. 다만 접근 가능한 수준의 가격대를 갖춘 독특한 감성의 브랜드라는 인식을 심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흔히 디자이너들은 해외 진출하면 럭셔리로 포지셔닝하려고 해요. 저는 아닙니다. 내 옷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입어주길 바래요. 많이 파는, 느낌으로 입는 옷이 목표입니다."

박씨는 이번 뉴욕컬렉션 참가를 시작으로 현지에서 고가브랜드'박춘무'와 비교적 저렴한 '데무 박춘무'를 동시 출시한다. 이미 소호의 한 편집샵이 바잉 의사를 밝혔으며 유명 패션전문지 WWD가 그의 컬렉션을 리뷰하기로 했다. 그의 말대로 느낌이 좋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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