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아프면 추간판탈출증(디스크)이 아닐까 걱정하게 된다. 하지만 척추는 척추뼈와 디스크와 여러 신경 등으로 구성된 복잡한 구조여서 질환도 다양하다. 척추관이 좁아진 '척추관 협착증', 척추 뼈에 금이 가 분리된 '척추분리증', 외부의 강한 힘에 의해 척추뼈가 부서져 내려 앉는 '척추압박골절' 등이다.
이런 질환도 요통이 생기지만 디스크와 쉽게 구별하기 힘들다. 따라서 요통이나 손발저림 등 통증이 계속된다면 전문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자가 진단은 증세를 악화시키거나 치료를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디스크로 오해하기 쉬운 다양한 허리질환에 대해 알아본다.
꼬부랑 할머니 만드는 '척추관협착증'
척추관협착증은 척추 안의 신경 다발이 지나가는 척추관이 낡아 좁아져 신경이 눌리면서 엉덩이와 허벅지 발바닥 발목 종아리 등이 저리는 병이다. 척추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60대 이상의 환자 가운데 50% 이상이 척추관협착증일 정도로 흔한 질병이다.
따라서 디스크와 구별해야 한다. 디스크는 다리 통증을 계속 호소하지만 척추관협착증은 서있거나 걸을 때 즉, 척추를 펴고 있을 때에 아프다. 또 척추관 자체가 좁아져 신경다발을 전체적으로 누르므로 엉덩이와 다리 전체가 아프다.
통증이 심해지면서 걷기 힘들고 허리를 굽혀 걷기 때문에 '꼬부랑 할머니병'이라고 불린다. 이렇게 통증을 줄이려고 허리를 계속 굽혀 걸으면 평소에도 허리를 굽히게 돼 척추 자체도 변형된다.
척추관협착증은 초기이거나 통증이 심하지 않다면 약물이나 물리치료 등 대증 치료를 하면 된다. 하지만 치료 시기를 놓쳐 근력 약화, 마비, 배변 장애가 진행되고 있다면 수술을 해야 한다. 수술은 척추에서 협착증이 생긴 부위, 즉 척추의 잔가지 뼈들이 비정상적으로 증식된 부분을 잘라 주거나 긁어내는 것이다.
척추 자체가 변형됐거나 척추관 안의 다른 부위까지 손상됐다면 척추뼈 잔가지를 긁어낸 다음 해당 부위 척추뼈와 그 아래나 위의 척추뼈에 나사를 박고 서로 이어서 고정하는 척추 고정술을 시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 수술은 전신 마취를 통해 피부를 10㎝ 이상 절개하므로 수술 시간이 3~4시간 정도 걸리고 회복기간도 6개월 정도로 길다.
그래서 척추 자체에 문제가 없거나 손상이 심하지 않다면 해당 부분 잔가지 뼈들만 잘라 내는 미세 현미경 감압술을 시행한다. 척추의 등 부위의 피부를 1.5~2㎝만 절개하고 신경을 누르는 뼈나 인대를 미세하게 긁어낸다. 절개 부위가 척추 고정술처럼 크지 않고 부분 마취하므로 수술 시간도 1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신규철 제일정형외과병원 원장은 "미세 현미경 감압술은 부위 마취를 통해 수술을 하므로 특히 나이가 든 고령자에게 큰 문제 없이 시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더 발전된 일측(一側) 접근 미세 감압술(UBF)은 병변의 한쪽으로 접근해 양쪽 신경을 감압하는 방법이어서 정상조직을 최대한 보호하고 수술 시간도 45분까지 줄일 수 있다.
허리를 굽히고 펼 때 '두둑'거리는 '척추분리증'
척추분리증은 척추뼈에 금이 가 앞뒤로 어긋나 분리된 상태를 말한다. 보통 아래 뼈를 기준으로 그 위 뼈가 앞쪽, 즉 배 쪽으로 어긋나면 척추전방전위증, 등 쪽으로 어긋나 있으면 척추후방전위증이라고 한다. 물론 이 상태라도 척추관절을 붙잡고 있는 근육과 인대가 튼튼해 척추뼈의 안정성이 잘 유지될 때는 문제가 없다. 실제 정상인의 5% 정도에서 발견될 만큼 흔하지만 대부분 젊어서는 모르고 지내다 노화로 근육과 인대의 지지력이 약해지는 중년 이후에야 알게 된다. 허리를 굽히고 펼 때, 비틀 때 '두둑'하는 소리가 들리며 몹시 아프다면 척추뼈가 어긋났을 수 있다.
척추뼈가 어긋나는 이유는 선천성 및 퇴행성 척추분리증에 의한 것과 교통사고와 낙마 같은 외상 등 크게 3가지다. 박승원 중앙대 용산병원 척추센터 교수는 "선천성이든 퇴행성이든 척추뼈의 퇴행 현상이 먼저 시작되기 때문에 척추전위증 초기에 허리가 뻐근하고 묵직하면서 근육이 뭉쳐 있는 듯한 불쾌한 느낌만 받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해도 다리가 당기면서(다리 방사통) 심한 요통이 생겨 아예 거동을 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이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어긋난 척추뼈를 바로잡아 나사못으로 단단히 고정하는 것이다. 제자리를 이탈한 뼈와 인대로 계속 자극을 받는 신경을 풀어주고 흔들리는 척추관절도 동시에 안정시키는 방법이다. 현미경과 내시경 수술을 병행하는 경피적 척추고정술을 시행하면 전신 마취를 하지 않고 부위 마취만으로도 피부 절개 창과 출혈을 최소화할 수 있다. 고도일 고도일병원 원장은 "척추고정술을 할 경우 수술 후 7~10일간 입원해야 하고, 그 후에도 한동안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술 후 재발을 막으려면 적당한 운동과 허리를 똑바로 펴는 바른자세를 유지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장시간 운전도 하지 말아야 하며, 침대 매트리스는 너무 푹신하지 않고 약간 단단한 것이 좋다. 또한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옆으로 누운 자세를 한 뒤 손을 짚고 서서히 일어나야 한다.
거의 누워 지내야 하는 '척추압박골절'
척추압박골절은 외부의 강한 힘에 의해 척추가 부서져 내려앉은 상태를 말한다. 겨울철에 골밀도가 낮은 노인에게 특히 많이 발생한다. 등과 허리가 심하게 아파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라 거의 누워 있어야 한다. 재채기를 하거나 숨을 쉬기만 해도 통증이 생긴다. 특히 70세 이상 고령인의 압박골절은 12% 정도가 하반신 마비가 되므로 정확한 검사를 한 뒤 수술을 받아야 한다.
수술은 주사바늘을 이용해 금이 간 부위에 뼈에 쓰는 골시멘트를 주입하는 '척추성형술'이 있다. 수술 시간이 20~30분 정도로 짧고, 수술 후 조기에 통증이 줄고 며칠 안에 걸을 수 있다. 도은식 더조은병원 원장은 "고령인의 경우 척추수술에 대한 부담이 크므로 '수면부위마취수술'을 통해 안전하게 수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면부위마취수술이란 전신 마취가 아닌 수술에 필요한 부위만 마취하는 것으로 환자 스스로 호흡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심장이나 폐 기능도 그대로 유지한 채 수술이 이뤄진다.
대나무처럼 허리가 굳는 '강직성척추염'
강직성 척추염은 척추에 염증이 생기면서 점점 굳어져 움직임이 둔해지는 류마티스 질환이다. 흔히 관절염 증상과 비슷해 '척추 관절염'이라고 불린다.
20대 젊은층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남성이 여성보다 5배 정도 많다. 척추 관절과 천장(엉덩이 쪽) 관절에 염증이 생기면서 초기에는 뻣뻣한 느낌이나 통증, 부종 등이 생긴다. 하지만 증상이 심해지면 척추의 연결 부위가 굳어져 마치 대나무처럼 허리가 굳어버린다.
주로 아침에 허리가 뻣뻣하면서 통증이 있고 운동하면 호전되고 휴식 시 통증이 심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가장 좋은 치료법은 운동이다. 운동은 통증을 줄여주고 관절강직을 막고 관절운동을 원활히 해주므로 중요한 치료법이다.
약으로는 최근 개발된 생물학적 제제(TNF억제제)가 증세가 심하고 기존 치료로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한 환자에서 통증뿐만 아니라 운동기능, 염증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따라서 증세가 심하다면 조기에 생물학적 제제를 사용해 증상을 완화하는 것이 좋다. 애보트의 '휴미라(성분명 아달리무맙)', 와이어스의 '엔브렐(에타너셉트)', 쉐링푸라우의 '레미케이드(인플락시맙)' 등이 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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