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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장군이와 똘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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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장군이와 똘이 이야기

입력
2010.01.28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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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우리 마을 아랫집엔 진돗개 장군이와 알래스카 말라뮤트 똘이가 산다. 장군이는 언젠가 겨울에 옆 산에 갔다가 덫에 걸렸는데, 며칠간의 사투 끝에 살아 돌아온 장군다운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인지 똘이가 덩치가 훨씬 크고 그 집에 먼저 왔지만 장군이가 형님 노릇을 해왔다.

보통은 묶여 있지만 풀어놓으면 똘이는 장군이 뒤를 따라다니다 가끔 구박을 받기도 한다. 특히 똘이가 주인의 눈길이라도 더 받는 듯싶으면 장군이는 이를 시샘하여 덤벼들곤 한다. 얼마 전에도 그런 일로 갑자기 똘이를 공격했는데 이번에는 똘이가 역습을 감행하여 그 큰 덩치로 장군이를 누르며 목덜미를 꽉 물어버렸다. 그러자 장군이는 그만 깨갱 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며칠 후 저녁 먹고 남은 것을 마당에 온 똘이에게 주자 장군이는 그 뒤에서 얼쩡거리며 구경만 하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이 안쓰러워 먹을 것을 더 가져왔더니 똘이가 달려들어 난리를 치고 장군이는 구경만 한다. 할 수 없이 똘이에게 조금 떼어주고 나머지를 장군이에게 주었다.

그랬더니 장군이는 똘이 눈치를 보며 급히 몇 입을 먹더니 그릇을 물고는 옆으로 냅다 뛰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먹으려는 셈이었나 본데 그러는 바람에 그릇에 담긴 밥들이 다 흩어져 버렸다. 그걸 똘이가 와서 주워 먹어도 장군이는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군처럼 당당하던 놈이 똘이 눈치를 보며 슬슬 피하는 걸 보니 한편으로는 측은하고 한편으로는 미워 보였다. 다시 보니 비굴한 태가 얼굴에 흐르는 듯도 하였다. 똘이에게 한 번 제압 당했다고 확실하게 굽히고 들어가는 모습이 영 마땅치가 않다. 짜식, 다시 한 번 붙어보든가 최소한 저항이라도 하지 그렇게 허망하게 꼬리를 내려 버리다니.

장군이를 보면서 동물과 인간의 세계는 같으면서 또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어제까지 무리의 우두머리였다가도 새로운 놈이 나타나 제압해 버리면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거나 확실하게 머리를 숙이고 새 대장 밑으로 들어간다. 인간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어제의 부하에게 비굴하게 머리를 숙이고 살아야 하는 일쯤은 다반사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죽을 때 죽더라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것이 또 인간이기도 하다. 한 번 졌다고, 상대가 나보다 훨씬 힘이 센 놈이라고 바짝 엎드리지 않고 한 번 붙어보는 것, 승산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옳다고 믿기 때문에 묵묵히 싸움에 임하는 것, 강한 타격을 입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대드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세계를 인간답게 만드는 밑바탕이다.

인간의 역사는 아마도 그런 저항이 쌓여서 발전해 온 것이 아닐까? 종교가 모든 것을 지배하던 세상도 한 사람의 절대자가 모든 권력을 휘두르던 왕정시대도 숱한 이들의 저항으로 결국은 무너지고 말았다. 우리 사회만 보아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군부독재의 막강한 힘을 물리친 것은 밟히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민주화를 외친 수많은 민초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거대한 힘에 저항하고 있다. 비인간적인 자본주의체제와 우리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물질만능주의, 모든 것을 힘으로만 밀어붙이려는 무지막지한 위정자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이들이 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거나 하다 못해 담벼락에 대고 욕을 해대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노력이 지금은 헛수고처럼 보여도 결국은 세상을 바꿀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떤 저항을 하고 있는가? 슬그머니 부끄러워진다. 장군이에게 밥이라도 한 덩이 갖다 주어야겠다.

김용민 연세대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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