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그간 여당과 보수언론이 주장해온 형사단독 재판 강화와 재정합의제 활성화 등을 일정부분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 지난 14일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의 국회폭력 사건에 대한 무죄판결로 논란이 촉발된 지 약 2주 만이다. 사법부의 '화답'으로 판결을 둘러싼 집권 보수진영과의 갈등이 풀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근거가 불확실한 여론몰이 공세에 사법부가 휘둘리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보수진영은 '어린' 판사들의 '튀는' 판결이 문제라며 경력 5년 이상이면 단독판사를 맡길 수 있도록 한 현행 인사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논란이 된 판결은 결코 어린 판사들이 한 것이 아니었다. 강 대표에게 무죄 판결한 이동연 판사는 올해 경력 14년의 중견 법관이다.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를 결정한 이광범 판사는 경력 28년의 베테랑 판사다. 지난해 국회 홀을 점거한 민노당 당직자에 대해 공소기각 결정한 마은혁 판사도 경력이 11년이다.
보수진영은 또 우리법연구회를 겨냥해 날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역시 문제의 판결 상당수는 우리법연구회와 무관했다. 오히려 보수적 판결을 한 우리법연구회 판사가 적지 않다(한국일보 20일자 3면 참조). 이런 사정을 뻔히 알 텐데도 보수진영의 이념공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한 원로 법학자는 27일 한 보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법연구회의 '우리'는 북한에서 자주 쓰는 용어"라고까지 말했다. 전형적인 색깔 공세다. 결국 사법부가 외압에 못 이겨 스스로 구성원들의 권리를 근거 없이 제한하는 결정을 할지도 모르겠다.
사법부가 신뢰회복을 위해 해야 할 것들은 많다. 하지만, 특정 이념에 치우친 여론몰이에 적당히 타협하고 갈 일은 아니다. 사법부가 흔들리면 힘없는 국민은 더욱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문준모 사회부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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