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아름다운 정복 욕망 담은 한자 ’날 생(生)‘은 줄(一) 위에 올라선 소(牛)처럼 위태로운 모양새다. 산다는 게 소 줄타기 같다는, 누구나 인생이라는 줄에서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고대 중국인들의 사고가 반영된 것인지 모른다.
‘맨 온 와이어’는 인생이라는 곡예를 따분하게 여기다 실제 줄타기로 극한의 모험에 도전했고, 불가능으로 보였던 그 도전을 성공이란 단어로 전환시킨 한 사내의 이야기를 담았다. 1974년 뉴욕의 지붕, 당시 세계 최고층 빌딩이었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사이를 줄로 오가며 뉴요커를 희롱한 프랑스인 필리페 페티의 실화를 전한다.
1968년 17세 소년 페티는 치과에 들렀다가 신문에 실린 한 장의 사진에 마음을 뺏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짓는다는 보도에 소년은 치통도 잊은 채 치과를 박차고 나온다. 하늘 위에서 걸어보겠다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꿈을 꾸게 된 것. 지구촌을 놀라게 한 예술적인 범죄의 시작이다.
페티는 친구들을 모았고 도움을 요청했다. 1971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두 첨탑 사이를 오가며 첫 도전에 성공했고, 1973년엔 호주 시드니의 하버 브리지 철탑 사이를 횡단, 꿈을 이루기 위한 예행 연습을 마쳤다.
세계무역센터 정복은 쉽지 않았다. 헬리콥터를 동원해 공중 촬영을 했고, 200번의 사전 답사를 했다. 완공 되기 전이라 출입도 쉽지 않았다. 용역업체 직원의 신분증을 위조해 빌딩 옥상에 잠입했다. 1974년 8월 7일 오전 6시 45분 페티는 꿈의 도전에 나섰고, 여덟 차례 줄 양쪽을 오가며 45분 동안 하늘에 머물렀다. 경찰에 체포된 뒤 페티가 남긴 말. “난 세상 꼭대기에서 춤을 춘 사람이에요.”
지난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에서 최우수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2008년엔 선댄스영화제 관객상과 심사위원상, 카를로비바리영화제 최우수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당시 기록필름과 사진을 활용했고, 재연 장면을 통해 극적 효과를 얻었다. 페티와 친구들의 증언이 당시 경이적인 도전이 연출한 긴박감을 되살려낸다. 도전에 나서기 전 경비원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건축물 자재 덮개를 쓰고 세 시간 동안 꼼짝하지 않았다는 사연 등 뒷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족 하나. 영화 속 기록화면에는 ‘세계무역센터가 미국의 화합 정신과 세계 평화를 상징하게 될 것’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약 30년이 지나 적개심으로 똘똘 뭉친 폭력에 의해 잿더미로 변한 쌍둥이 빌딩의 운명이 아이러니하다. 물론 그 덕에 페티의 줄타기 기록은 전무후무한 역사로 남게 됐지만.
감독 제임스 마쉬. 호기심을 자극하고 때론 아찔한 현기증과 조바심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은 저명한 영화음악 감독 마이클 니만의 솜씨다. 2월 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 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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