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망명 정부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에는 '꼬리아 라마'로 불리는 한국인 비구가 있다. 23년 동안 히말라야를 선방 삼아 수행하고 있는 청전(57) 스님이다. 그가 자신의 30여년 행각(行脚)을 에세이 <나는 걷는다 붓다와 함께> (휴 발행)로 펴냈다. 지난달 일시 귀국한 스님을 26일 서울 인사동에서 밥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껑충한 키에 군살 없는 얼굴이 그가 사는 설산의 삼릉석을 닮았다. 나는>
그는 가톨릭 사제가 되려던 젊은이였다. 1953년생 뱀띠, 전주교대에 입학하던 해 10월유신이 터졌는데 당시 민주주의 수호에 앞장서던 천주교에 마음이 쏠렸다. 그러나 신학교에 편입한 뒤에도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갈급은 멈추지 않았다. 우연히 읽게 된 '선가귀감'의 한 토막이 그를 사로잡았다. '삶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짐이다(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묻고 물어 당대의 선지식이던 구산 선사(1909~1983)를 찾아갔다.
"큰스님이 나를 가리키더니 딱 그러시데요. '학생은 전생에 천축국의 고행승이었다'고. 인연법이란 게 있는 건지, 그 전생이라는 말이 왜 그렇게 가슴을 후비는지…."
"민중을 위한 사제가 되겠다"던 젊은이는 1977년 입산해 청전이라는 법명을 얻었다. 그리고 10년을 선방에서 공부했다. 에세이의 앞부분은 이렇게 출가한 스님의 "풋중 시절"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은산철벽을 뚫으려는 기개보다 "관시염보살"을 외는 촌로들을 딱히 여기는 애틋한 마음이 앞서던 시절이었다.
"내게는 민중이 부처고 종교예요. 수행도 결국은 사람을 위한 것 아닌가요. 거룩한 성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힘없는 이웃들을 섬기기 위해 정진하는 거겠죠."
1987년 "서로를 배려하는 따뜻한 가슴"을 찾던 스님의 발길은 해외로 이어졌다. 구산 선사의 말이 씨가 된 것일까. 태국과 미얀마를 거쳐 인도에서, 그는 평생 스승이 되는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 그는 첫 대면의 법거량(法擧揚)을 이렇게 기억했다. "내가 물었죠. '당신은 누구냐?' 그분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Emptiness.'(공ㆍ空이다)"
그러나 청전 스님이 20년 넘게 달라이 라마 곁에 머물고 있는 것은 수승(殊勝)한 법력에 반해서가 아니다. 항상 낮은 이들을 위해 이야기하는 달라이 라마의 자세, 그리고 자비행을 강조하는 티베트 불교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중국 선종의 전통을 잇는 한국 불교는 지혜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우리 수행자들은 늘 인상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반면 티베트 승려들은 얼굴이 편안하죠. 보리심을 실천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이라는 골인점은 같지만 방편이 다른 것이죠."
한국의 비구로서, 또 달라이 라마의 제자로서 청전 스님은 새벽 4시면 일어나 보릿가루 먹고 명상하고 간경(看經)하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수행자의 본분을 묻는데, 대답이 짧고 단단했다. "청정한 마음, 그리고 자비행이겠죠." 그는 2월 2일 히말라야의 수행처로 돌아간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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