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는 허허벌판이다. 현 공정률은 2.5%. 토지 수용비 등으로 예산의 4분의 1이 집행됐지만, 정치권 싸움에 발목 잡혀 공사는 지지부진하다. 그런데 터 닦기가 한창인 이곳에 국내 최고의 화장장이 덜름하게 들어섰다. SK그룹이 500억원을 들여 완공한 뒤 세종시에 무상 기부한 '은하수공원 장례문화센터'다. 13일 문을 열고 장례부터 봉안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잔디장 수목장 화초장으로 구성된 자연장지도 갖췄다. 완공 시기를 기약하기 어려운 신도시에 처음 들어선 건물이 망인을 떠나 보내는 화장장이라니 아이러니하다.
▦ SK 화장장이 이곳에 자리잡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출발은 1998년 타계한 고 최종현 SK 회장의 유언이다. "내 시신은 화장하고, 훌륭한 화장시설을 만들어 사회에 기증하라."그의 화장 소식은 고건 당시 서울시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솔선수범으로 이어지는 등 '화장 유언 남기기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SK그룹은 서울 원지동에 화장장 건립을 추진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돼 새로 건설되는 세종시를 택했다. 대도시 화장률이 70%를 넘는 데 비해, 유교사상이 강한 충청지역은 30%에 불과한 현실도 감안했다.
▦ 화장은 신석기시대부터 매장, 풍장과 함께 널리 쓰인 장례법. 특히 불교가 도입된 삼국시대 이후 성행했다. 매장이 일반화한 것은 조선시대 들어서다. 조상을 잘 모셔야 후손들이 복을 받는다는 유교사상 때문이었다. 땅속의 생기가 충만한 장풍득수(藏風得水)의 명당에 매장해야 가문이 번창한다는 풍수지리설의 영향도 컸다. 조선 초 유불(儒佛)일치론을 주창한 기화(己和) 스님은 "집이 무너지면 주인이 머물 수 없듯이 몸이 무너지면 정신이 떠나는 것"이라며 화장을 옹호했지만, 시신을 생전의 부모와 동일시한 효의 관념을 이길 수는 없었다.
▦ 다행히 요즘 들어 화장에 대한 거부감은 상당히 무뎌졌다. 98년 28%에 불과했던 국내 화장률은 2005년 50%를 넘어섰고, 작년엔 62%까지 올랐다. 99년부터 2007년까지 화장이 매장을 대체한 데 따른 비용 절감액이 1조9,305억원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지만 화장률 99%인 일본에는 한참 뒤진다. 화장률이 아직 기대 이하인 이유는 화장장이 혐오시설로 인식돼 신축은 물론 개ㆍ보수도 쉽지 않은 탓이다. 현재 은하수공원에는 서울 부산 울산 등 각 지자체의 견학이 이어지고 있다. 시설이 뛰어난 화장장이 더 많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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