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상원의원 시절인 2005년과 2006년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의 상원 인준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둘 다 보수색이 너무 짙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로버츠 대법원장에 대해 대법원장으로서의 지식 등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면서도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가치관과 시야, 감정 개입의 정도”라며 반대 이유를 밝혔다. 9명의 대법관 중 가장 나이가 어리고(당시 50세) 판사 경험도 짧은 것을 은근히 꼬집은 말이다. 이 반대표는 그가 최초의 흑인대통령 꿈을 이루기 위해 내린 정치적 판단이었다는 논란을 낳았다.
로버츠 대법원장이 악연의 오바마 대통령에게 복수를 한 것일까. 기업들의 특정 후보에 대한 비방ㆍ 지지 광고를 무제한 허용한 대법원 판결이 미 정치권에 핵폭풍을 몰고 오자 로버츠 대법원장의 보수 ‘본능’이 드디어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지난해 9월 휴회 중에도 불구, 특별회기를 열어 이번 판결 건에 대한 청문회를 여는 ‘정성’을 보였다. 소송은 지난 대선 중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비방하는 영상을 만든 보수단체와 영상의 방영을 막은 연방선거위원회(FEC) 간에 제기된 것이었다.
로버츠 대법원장의 소신은 수정헌법 1조의 표현의 자유가 정부기관에 의해 봉쇄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미 대법원이 진보와 보수의 균형점에서 점차 보수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최근의 우려는 로버츠 대법원장의 적극적 리더십과 관계가 깊다.
이번 판결 못지 않게 정치적 후폭풍이 예상되는 대법원 판결 중 하나는 총기소유권 규제에 대한 것이다. 지난 회기에 워싱턴의 권총소지금지법을 위헌으로 판결한 대법원은 시카고 당국의 총기규제법에 대한 심리를 진행 중이다. 여기서도 ‘무장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2조를 들어 위헌 판결을 한다면 더욱 격렬한 파당적 대립을 몰고 올 것이 뻔하다.
진보파 대법관들의 수장으로 평가받는 존 폴 스티븐스가 올해를 끝으로 35년 대법관 생활을 마감할 것이라는 전망도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악재이다. 1975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에 의해 지명된 스티븐스는 미 역사상 두 번째 고령(90세) 대법관이다. 그는 올해 10월 시작되는 회기에 재판연구관 4명 대신 1명만을 고용, 종신직 대법관 사퇴 가능성을 높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후임에 진보성향의 법관을 지명할 테지만 스티븐스의 ‘공백’을 메우기는 역부족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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