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간 세계금융은 투자은행(IB)의 시대였다.
IB는 첨단 금융공학기법으로 기상천외한 파생상품을 만들어내고, 국경과 시간을 넘나드는 투자로 천문학적 부가가치를 만들어냈다.
세계금융을 대표하는 월스트리트 자본주의도 결국 IB자본주의였다. 하지만 서브프라임모기지 후폭풍으로 대형 IB들이 줄줄이 간판을 내리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든 마당에, 이제 오바마 대통령의 금융개혁으로 또 한번 치명타를 맞게 됨에 따라 'IB시대가 끝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물론 오바마의 총구가 겨낭한 곳은 상업은행(CB)들이다. 더 정확하게는 CB와 IB기능을 겸비한 대형은행, 대표적으로 골드만삭스 같은 곳들이다.
정부규제와 보호(예금자보호)를 받는 상업은행이 고유의 예금ㆍ대출 업무에 치중하지 않은 채 주식이나 채권, 원자재 및 파생상품 등 '고위험-고수익' 투자에 더 이상 매달리지 못하도록, 즉 IB 기능을 도려내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금융시스템은 CB와 IB를 엄격하게 구분했던 1933년의 글래스-스티걸 법(Glass-Steagal Act) 체제로 회귀하게 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오바마의 월스트리트 개혁이 성공을 거둔다면, CB-IB의 겸영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IB자체도 위상이나 성격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양대 하준경 교수는 "지금껏 IB들은 레버리지 효과(자기자금 아닌 차입을 통해 수익을 내는 것)를 이용해 거품을 먹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해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IB기능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전처럼 전성기를 구가할 수는 없어도, 금융시장이 존재하는 한 시장거래를 중개하는 IB업무가 없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김대식 한양대 교수는 "레버리지 투자가 힘들어 IB들의 이윤 규모는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그런 만큼 새로운 투자처나 다른 상품 개발에 열을 올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번에 IB가 문제가 된 것은 자기자본으로 위험 자산에 직접 투자했기 때문"이라며 "주식이나 채권 및 기타 상품을 통해 자금 조달을 직접 중개하는 IB의 원래 임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종래의 5대 IB(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리만브라더스 베어스턴스) 가운데 3개(메릴린치 리만브라더스 베어스턴스)가 문을 닫고 골드만삭스마저 영업 구조의 변화가 불가피한 처지에 놓임에 따라 IB시장은 이제 '빅 플레이어'가 사라진, 따라서 규모의 축소가 불가피해 보인다.
정 수석연구원은 "미국이나 영국의 규제 방향에 따라 한국 역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며 "3, 4년 전부터 IB를 지향해 온 우리나라도 방향성에 대해서 다시 검토하고 여건을 재고해 봐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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