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만~3,000만원 줄 테니 시험 친 내용이랑 답안을 정리해서 미국에 있는 아이에게 5,6시간 안으로만 보내달라는 학부모들이 많아요. 우리 강사들끼리는 앞뒤 안 재고 돈만 생각하면 1년에 몇 억원은 쉽게 벌겠다는 이야기도 종종 하죠."
미국 대입수학능력시험(SAT) 문제지 유출을 둘러싼 학원과 학부모 간 은밀한 거래는 단지 소문이 아니었다. 태국뿐만 아니라 한국 시험장에서도 SAT 시험지를 빼내 시차를 두고 미국에서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에게 보내주는 대가로 수천만원의 금품이 오간다는 것이었다.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SAT 강사로 유명한 30대 학원강사 A씨는 25일 한국일보 기자와 만나 자신도 학부모들로부터 여러 차례 거래 제의를 받았고, 실제 은밀한 거래가 학원가에서 적지 않게 이뤄진다고 털어놓았다. 문제지를 유출하는 강사는 학부모 사이에서 소문이 퍼져, 다른 학부모들의 제의도 쏟아져 들어온다는 것이다.
A씨는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모든 강사들이 나서는 것은 아니다"라고 단서를 달았다. 한번 소문이 나면 다른 학부모의 제의를 거절 할 수 없게 돼 계속 유출을 시도하다가 결국 꼬리를 밟힐 수 있기 때문이다.
A씨는 "(나는) 학원 쪽에서 계속 일할 생각이어서 제의를 거절했지만, 단기간에 큰 돈을 쥐려는 강사들은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며 "최근 치러진 시험에도 당초 많은 강사가 신청했다가 분위기가 어수선해 응시하지 않았는데, 눈치 없는 강사 하나가 딱 걸렸다는 말도 있다"고 전했다.
미국 아이비리그 출신인 또 다른 SAT 강사 B(30)씨도 "아무리 감추려 해도 주변에서 어느 강사와 누구 학부모가 '작전'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꾸준히 들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국내 SAT 학원 시장이 미국 고등학교에 다니는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 강남을 비롯해 분당, 일산 등에서 성업 중인 SAT학원은 줄잡아 90~100곳. 이 학원들 대부분은 유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귀국하는 12~1월, 6~8월에 집중적으로 SAT반을 운영한다.
한달 수강료는 300~500만원(12회 강의)선. B씨는 "미국에는 SAT 학원이 따로 없다 보니 유학생들이 방학이면 대거 국내로 들어온다"며 "수강료엔 일대일 컨설팅 비용도 포함돼 있는데, 1년에 3,000만원 하는 VIP 컨설팅도 있다"고 귀띔했다. 학원관계자 C씨는 "최소 4,000억원 규모의 SAT 시장이 형성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들 유학생 중 일부의 학부모들이 아예 거액의 금품을 통해 시험지 유출을 요구한다는 얘기다. B씨는 "실력이 안 되는 자녀를 조기 유학 보낼 정도로 재력이 있다 보니 수천만원 정도는 이들에게 큰 돈은 아니다"고 전했다.
시험지 유출은 허술한 시험 관리 탓도 크다. SAT는 외국어고와 국제학교 등 전국 22곳에서 치러지는데, 시험지 관리나 시험장 감독은 시험주관사인 미국교육평가원(ETS)이 아니라 고사장으로 쓰이는 학교가 직접 담당한다.
특별한 책임이 없는 이들이 시험을 관리하다 보니 관리가 느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B씨는 "국제학교에서 치러지는 시험의 경우 관리가 더 느슨해서 대리시험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고 말했다.
이태무 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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