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1일 뉴욕 월스트리트의 '살찐 고양이(대형 은행)'들을 겨냥, 초 강경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TV로 생중계된 연설을 통해 "납세자들의 돈을 위험에 빠뜨리는 은행들의 위험한 투자와 대형화를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은행들이 고수익 추구를 위해 자기자본을 이용해 파생상품 등에 투자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고, 사모펀드 및 헤지 펀드를 소유ㆍ 운용하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방침이 입법화하면 1999년 이후 경계가 없어진 상업ㆍ투자 은행간 업무 분리가 다시 불가피해져 은행 시스템은 크게 바뀌게 된다.
왜 나왔나
오바마 구상의 주 타깃은 이른바 은행들의 자기자본 투자 '행태'다. 은행들은 고객의 돈으로 위험 투자를 못하지만, 자체 자산이나 외부 차입금으로 채권과 주식, 각종 파생 상품 등에 투자한다. 이는 예금ㆍ대출 이자 마진, 중개업무를 통한 수수료 수입에 비해 위험은 크지만 수익은 막대하다. 2008년 9월 파산한 리먼 브라더스를 비롯한 당시 초대형 금융기관들은 외부 차입금으로 자기자본의 20배~30배까지 고위험 투자를 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급기야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주택 담보대출 관련 파생상품에 대한 무차별 투자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미 정부의 세금 투입으로 위기에서 벗어난 월가는 이 같은 '달콤한' 투자 관행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다시 고위험 투자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보너스 잔치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손실이 커지면 언제든 금융시스템을 붕괴시킬 수 있는 '위험한 게임'이다. 오바마 구상은 당국의 규제와 보호를 받는 예금ㆍ 대출 업무 중심의 상업은행이 고위험 투자를 그만두도록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향후 파장은
오바마 구상은 대공황 발발 직후인 1933년 발효된 '글래스 스티걸 법'을 연상시킨다. 이 법은 투자, 상업은행을 분리해 상업은행이 고객의 예금으로 주식투자를 할 수 없게 했다. 하지만 1999년 이 법의 폐지로 상업은행도 투자 업무에 진출했다. 오바마 구상이 실현되면 투자업무를 떼내야 하는 상업은행은 가장 큰 수익원을 잃게 돼 규모축소가 불가피해 진다.
오바마의 구상은 벌써부터 세계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고 있다. 월가 대형은행들의 경쟁력이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 등으로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 지수는 21일 은행주를 중심으로 한때 200포인트 이상 빠졌다. 런던 증시도 22일 전날보다 0.13% 떨어진 상태에서 출발하는 등 유럽과 아시아 증시도 하락세를 보였다. 입법화가 필요한 오바마 구상에 대해선 월가와 보수층, 공화당의 반대가 거셀 것으로 보인다. 월가는 "금융위기는 무분별한 대출 때문인데 투자가 문제인 것처럼 잘못 진단하고 있다"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 코스피 37P↓· 환율 14원↑
국내 금융시장이 '오바마발(發)' 악재에 무너졌다. 코스피지수는 1,700선이 깨졌고 원ㆍ달러 환율은 단숨에 1,150원대로 올라섰다.
22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37.66포인트(2.19%) 빠진 1,684.35로 거래를 마쳤다. 코스피지수는바로 전날 1,720선을 넘으면서 다섯 달만에 전고점을 뚫었지만, 새벽 뉴욕증시 추락 후폭풍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코스닥지수(546.66)도 2.37포인트 밀렸다.
원·달러 환율도 장중 1,155원까지 치솟았다. 종가는 전날보다 13.9원 오른 1,151원. 이로써 원·달러 환율은 4일 이후 보름여 만에 1,150원대로 복귀했다.
뉴욕증시는 미 은행 규제안과 중국의 긴축 선회가 가까워졌다는 관측에 21일(현지시간) 다우지수가 2.01% 급락 한데 이어 22일에도 개장과 함께 0.6% 하락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