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수첩 관련 민사재판(정정보도 청구)과 형사재판(명예훼손 등) 판결이 서로 다른 것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지적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 같은 차이는 일각에서 지적하는 판사 개인의 이념적 편차 때문이라기보다, 민ㆍ형사 재판에서 법률상 요구되는 입증 정도와 사실판단을 위한 증거채택 내용이 달라서 나타난 결과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 또한 적지 않다. A건설사는 2007년 모 기업 회장 B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면서 동시에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B씨가 저서에서 'A사가 관리비 과다징수 등으로 입주자와 분쟁이 있고, 폭력배도 동원했다'고 썼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형사 재판부는 "일부 과장되거나 부적절한 표현이 있으나 중요 내용은 진실에 합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책자 발간도 공익을 위한 것"이라며 B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형사 재판부의 무죄 판결 사유와 비슷한 맥락이다.
반면, 민사 재판부는 "B회장은 손해배상금 1,000만원을 지급하고 저작물 중 문제가 된 부분을 삭제하라"고 판결했다. "조직폭력배가 개입했다는 책의 세부내용 등이 허위인 만큼 원고가 입은 정신적 고통을 금전적으로나마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즉 형사처벌은 전체맥락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때만 유죄 선고할 수 있지만, 민사상 손해배상 기준은 그만큼 엄격하지 않다는 얘기다.
대법원도 2004년 경찰관 이모씨가 흉기를 휴대하지 않은 범인 김모씨를 총격 사망하게 한 사건에서 비슷한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김씨가 흉기를 소지하지 않았지만, 위협적 행동을 한 것은 사실인 만큼 이씨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의 형사책임을 지울 수 없다"며 형사사건에서 무죄 취지로 사건을 하급심에 돌려보냈다.
하지만 김씨의 유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선 "민사책임은 개인적 책임을 묻는 것으로 민사상 불법행위는 형사책임과 별개의 문제"라며 "신중히 판단하지 않고 실탄을 쏜 이씨의 행위는 민사상 불법행위"라고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이처럼 상반된 민ㆍ형사 판결에 대해 한 판사는 "민ㆍ형사 재판 간에 사실관계 파악 및 과실책임 인정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 큰 이유이며 형법과 민법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며 "판결 차이를 판사의 성향문제로 섣불리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권지윤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