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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남녀] 흰죽 한 그릇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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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남녀] 흰죽 한 그릇의 행복

입력
2010.01.2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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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먹는다는 것이 가장 감격스러울 때는 비싼 풀코스 정찬을 먹거나 갓 잡은 활어를 팔딱거릴 때 잡아먹는 순간이 아니다. 의외로 그냥 흰죽 한 그릇을 먹을 때, 먹는 것에 대한 감격이 벅차 오를 수 있다.

말갛게 밥물이 퍼진 흰죽은 보는 것처럼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일단 좋은 쌀은 기본이다. 죽이 완성되었을 때, 온전히 쌀의 맛으로만 승부해야 하는 요리인 만큼 신선한 쌀은 필수다. 신선한 쌀은 적당한 양의 수분을 머금고 있어서 호로록 하고 맑은 맛의 죽이 된다.

울 엄마는 집에 좋은 일이 있으면 온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전복죽을 쑨다. 좋은 전복이 한 마리만 있으면 똑 따서 얇게 썰어 참기름에 쌀과 함께 볶다가 물을 붓고 쌀이 퍼질 때까지 저어가며 죽을 끓인다. 옛날부터 우리 집에서 엄마의 전복죽이 상에 오르는 날은 무언가 좋은 일이 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이제 남편과 둘이 사니까 전복죽을 쉬이 끓이게 되지는 않는다. 전복 하나 따서 푸짐하게 끓인 죽을 부모님이랑 남동생이랑 나눠 먹던 생각을 하면서 그냥 흰죽을 자주 끓인다. 힘이 필요할 때, 지쳤을 때, 양구산 흰쌀을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물을 부어 끓이는 흰죽을 우리 남편도 좋아한다.

흰죽을 한 냄비 끓이는 동안 물을 조금씩 부어 저어주고, 다시 끓어오르면 물을 부어주는 식으로 가스레인지 앞에 오래 서서 죽만 내려다보며 끓인다. 십여 분의 시간 동안 죽만 바라보고 죽만 생각한다. 바쁜 일상 중에 잠깐, 죽만 생각하는 시간이 나는 좋다. 좀 더 퍼지게 할 것인가, 쌀알이 많이 투명해졌으니 이제 불을 끌 것인가 딱 그런 생각만 하면서 보내는 그 시간은 그 자체로 명상이 된다.

완성된 죽에 참기름 한 방울 더하고 작은 종지에 간장을 곁들여 소반에 올린다. 지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소반 앞에 앉는다. 간장을 숟가락 끝으로 톡 떠서 죽 위에 그림을 그린다. 입 안에 한 입 떠 넣으면 퍼지는 온기와 다정한 쌀 맛이 감동적이다. 불평불만 하다가도 쌀죽 한 그릇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오늘도 따끈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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