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작할 땐 그냥 제 의지를 시험하고 싶었습니다. 주사 바늘을 워낙 무서워했으니까요."
올해 환갑을 맞은 손홍식(60ㆍ사진)씨의 헌혈 인생은 단순한 동기로 시작됐다. 남을 돕는 행위라는 거창한 인식이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첫 헌혈은 34세 때였다. "내가 아플 때 누군가가 나를 도울 수도 있을 텐데, 그러려면 내가 미리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지 않을까…. 있었다면 그 정도가 전부였어요."
그런데 그게 하면 할수록 기쁨이 새록새록 솟더라고 했다. 그게 지금까지 무려 566회. 그는 헌혈 국내 최다 기록 보유자다. 그가 전한 피의 양은 대한적십자사 추정치로 22만6,400㏄(회당 평균 400㏄ 헌혈 기준). 성인 남자 1인 평균 혈액량이 4,200㏄이니 총 54명 분에 이른다.
통상 우리가 알고 있는 헌혈은 혈액 전체를 한 번에 320㏄나 400㏄ 뽑는 '전혈'(全血)을 말한다. 전혈은 수혈자의 건강 회복을 고려해 두 달에 한 번으로 제한된다. 군대 갔다 온 남자라면 기억할 '초코파이 헌혈'이 그것. 다른 하나는 성분 헌혈이다.
몸에서 뽑은 혈액을 특정 장치를 통해 혈소판(320㏄)이나 혈장(500㏄)을 분리한 후, 적혈구 등 나머지 성분을 혈관에 돌려보내는 방식. 이런 헌혈은 전혈보다 회복이 빨라 두 주일만 지나면 또 할 수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성분 헌혈이 없었습니다. 두 달에 한 번 하다 보니 중간에 까먹는 경우도 있어서 그때까지는 헌혈 횟수가 많지 않았습니다."손씨는 이후 성분 헌혈에 '입문'했다. 성분 헌혈은 품이 많이 든다. 전혈은 5~10분 정도면 끝나는 데 비해 혈장 헌혈이 30~40분, 혈소판 헌혈은 1시간 이상 걸린다.
손씨는 덤으로 건강도 챙긴다고 했다. 피를 뽑으면서 자동 신체검사를 하기 때문에 건강 이상 여부를 체크할 수 있다. 또 새로운 피가 만들어짐으로써 신체의 기(氣) 순환을 돕는다는 것. 그는 옛부터 우리가 혈액을 너무 소중히 여긴다고 걱정했다.
항상 '피는 몸에 잘 보관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해 헌혈을 꺼리는 사람이 많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그런 자신을 이겨보라고 했다. 그렇다고 강요하진 않는다. 자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의 기부 인생은 헌혈에만 그치지 않았다. 94년에는 일면식도 없는 만성신부전증 환자에게 왼쪽 콩팥을 기증했다. 2002년에는 간 일부도 떼어줬다. 이미 다른 신체 조직도 사후 기증을 서약했다. "부모님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스스로 '조립'을 잘할 수 있는 몸을 주셨으니까요."
2005년 전남통계사무소 보성출장소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친 그는 현재 광주연화복지회에서 요양보호사로 활동 중이다. 지금 일에 대한 그의 생각 역시 명쾌하다. "내가 앞으로 요양 보호를 받으려면 누군가를 먼저 도와주는 게 좋겠다…, 그거죠 뭐."
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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