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영 MBC 사장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김우룡 이사장의 감정 싸움이 노골화되고 있다. 인사 문제를 놓고서다. 엄 사장은 최근 방문진이 보도, 제작, 편성본부장 인선 과정에서 관리를 해태하고 있다며 방문진을 직접 비난했고, 김 이사장은 인사권 표류 책임 중 절반은 엄 사장에게 있다고 반박했다. 일각에서는 엄 사장이 자리를 걸고 한 판 승부를 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엄 사장은 18일 열린 임원회의에서 "방문진이 MBC에 대한 감독권은 있으나, 관리를 해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2월 21일 자신이 낸 본부장 인선안에 대해 방문진이 김재형 경영본부장만 내정하고 나머지 세 본부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지난 9일 두 번째 인선안도 방문진이 막판에 거부함에 따라 불만이 한층 증폭된 것으로 보인다.
김우룡 이사장도 21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한 달 이상 본부장 인사가 결정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그는 "그 책임은 엄 사장에게 반 이상 가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나머지 책임은 방문진의 것인데, 인사권자로서 인사권을 행사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이 인사권을 강조한 대목은 엄 사장의 거취까지도 논의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들린다. 그러나 김 이사장은 "각계 의견을 들어야 하고, 경영 실태에 책임을 물을 만한지도 짚어봐야 한다"면서 "현재로서는 노코멘트"라고 답했다.
방문진 정상모 이사는 "9일 인선을 마무리짓고 대상자 3명에게 내정 사실까지 알린 다음날 김 이사장이 K본부장 내정자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 때문에 전체 인선안이 무산될 수 있다'며 사퇴를 종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과 엄 사장은 보도본부장으로 각각 H씨와 C씨를 추천하다 K씨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이사는 "김 이사장이 엄 사장을 배제한 채 합의안을 막판에 파기한 것은 엄 사장에게는 사실상의 사퇴 압박"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엄 사장은 그냥 물러설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MBC의 한 관계자는 "엄 사장이 최근 전임 MBC 사장 등과 만났을 때 '소신 인사를 하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조언을 받은 것으로 안다"면서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를 받던 엄 사장이 최근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을 보면 사임까지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MBC 정기 주주총회는 통상 2월 말에 개최되지만 중순께로 앞당겨질 수도 있다. 주총을 앞두고 한두 차례 남은 임시 이사회에서 다뤄질 임원진 선임 건이 엄 사장 거취 문제로까지 연결될지 주목된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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