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과 해군을 중심으로 완전 무장한 미군들이 아이티 대통령 궁 등에 집중 배치되기 시작했다. 보안과 구호작업을 위해 현재까지 1만1,000명이 배치됐고, 총 병력은 향후 10만명에 이를 수 있다는 추정까지 나오고 있다. 이들을 바라보는 아이티인들의 시선은 복잡 미묘하다. 구원의 손길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과거 미국에 의한 점령과 피폐의 역사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AFP통신은 20일 이 같은 아이티인들의 복잡한 반응을 전했다. 포르토프랭스의 한 병원에 무장 미군들이 들어온 19일, 아이티인들은 기쁨을 표현하면서도 한편으론 한숨을 내쉬었다. 그레고리 장블랭(40)씨는 "그들이 와서 기쁘다, 도와주러 왔기 때문에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 반겼다.
그러나 친인척을 문병 왔다가 미군에게 쫓겨난 셸로브 카사마제(33)씨는 "미군 병사가 나가라고 했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10여명의 아이티 남자들이 병원 밖으로 쫓겨났고 말이 통하지 않아 미군들이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무너진 대통령궁을 미군이 지키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일부 아이티인들은 "주권에 대한 모욕"이라고 분노했다. 윌슨 길롬씨는 "대통령궁은 우리의 힘이고 얼굴이고 자존심이다"며 "이건 점령이다"고 말했다.
미군측은 "아이티 정부와 협력 하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온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아이티 재건을 이유로 미군의 주둔도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고, '점령'의 이미지는 갈수록 굳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1914년부터 20년간 아이티를 점령했었고 쿠바 견제를 이유로 아이티 독재정권을 지원, 아이티의 피폐화에 일조했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아왔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