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해남군 미황사 주지 금강(45ㆍ사진) 스님은 살림 참 잘한다. 궁벽한 갯마을, 허리 굽은 할머니들이나 무릎 짚고 오르던 퇴락한 절을 유럽인들도 찾는 명소로 만들었다. 벅적한 중창 불사를 일으키지도, 공양간에 우담바라를 피우지도 않고 그리 했다.
비결이라면 그저 먹고 자고 수행하는 공간을 사량(思量) 없이 나눴을 뿐. 스님이 그 너른 살림 이야기를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불광출판사 발행)이란 책으로 묶었다. 땅끝마을>
"한 20년 전인가요. 미황사에 처음 왔을 때 마당을 돌다가 벅차오르곤 했어요.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광에 감동하고, 1,300년 역사와 대웅전의 건축미에 감동하고…. 나 혼자 누리기 아까웠지요. 꼭 나눠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절인연이 닿았다. 2000년 이른 봄, 동안거를 막 끝내고 미황사를 찾았는데 밥 짓는 공양주 보살이 금강 스님을 보곤 "시님, 축하하요!"라고 말했다. 자기도 모르는 새 주지로 임명돼 있었다. 그리고 10년, 포교와 문화운동이 어우러진 살림을 통해 스님은 미황사를 템플스테이의 명소로 만들었다. 해마다 이 땅끝마을 절집을 찾는 사람 숫자가 10만을 넘는다.
"처음엔 아이들을 상대로 한문교실을 했어요. 2002년에 조계종 포교원에서 처음 템플스테이 사찰을 공모했는데, 그때 신청했더니 다들 터무니없다고 했습니다. 누가 미황사까지 가겠느냐는 거였죠. 하지만 한국까지 찾아온 손님들에게, 서울과 해남의 거리는 멀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았죠."
한국의 독특한 자연미와 시골 사람들의 인심, 불교 수행 체험이 맞물리면서 미황사는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괘불제와 산사음악회 등 미황사만의 프로그램도 큰 매력. 그러나 무엇보다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금강 스님의 넉넉함이다. 외국에서 온 학자건 딸자식 혼사를 걱정하는 아주머니건, 손님이 찾아오면 그는 기꺼이 하루 수십 잔도 넘는 차를 달인 다구를 다시 씻는다.
"별로 잘해드리는 것도, 편안한 잠자리도 없는데 스님한테 차 한 잔 대접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소문이 났나 봅니다. 어떤 때는 하루 쉰 잔도 넘게 마시는데, 제 몸 속엔 아마도 피 대신 찻물이 흐를 겁니다."
금강 스님이 요즘 관심을 쏟는 것은 마을 고유의 당제 행사다. 단순한 기복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스님은 그 속에 담긴 신실하고 소박한 마음에 주목한다. "처음 부임한 해 섣달 그믐날, 주민들이 머리에 공양물을 이고 20리 길을 걸어 절로 찾아오는 거예요. 당제를 지내기 위해서였죠. 불교는 사람들의 그런 정성에 더 가까이 다가갈 길을 찾아야 할 겁니다."
유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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