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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여름의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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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여름의 달력

입력
2010.01.20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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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사과를 깨물면 내가 있고

사과를 네 쪽으로 갈라서 깎기를 좋아하던 당신이 있고

나는 구름이 변하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구름의 발목이 사라지는 광경을 바라본다.

발목이 발목을 데리고 가는 순간에,

당신의 전화가 울린다.

여름의 구름은 대기의 규칙을 따른다.

오른발을 먼저 내미는지 왼발을 먼저 내미는지

하얀 선 앞에 서보고 싶었는데.

멀리서 시작된 누군가의 달리기.

당신의 자동응답기는

여름의 목소리만 담고 있다.

그리고 당신의 달력은

월요일부터 시작한다.

구름과 초록은 대기로 스며들고

사라지고

내 여름의 달력은

일요일부터 시작한다.

● 한 인간에게 허용된 여름이란 많아봐야 100개 정도.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웠던 여름은 고작 한 개. "내게는 아름다웠던 여름 따위는 하나도 없었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겠죠. 그런 여름이 있었다고 해도, 또 없었다고 해도 어쨌든 우리에게 허용된 여름은 많아봐야 100개,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웠던 여름은 고작 한 개라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지요. 그 하나의 여름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은 무더운 여름날,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는 일과 비슷합니다. 혀는 맛을 보는 게 아니라 표면의 차가움을 느낍니다. 그런 차가움은 처음인 것처럼. 그 하나의 여름 속에서 우리는 처음처럼 살았을 테죠. '두 번 다시'란 없는 것처럼. 아름다운 여름이란 그런 뜻이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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