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떤 말로 이 참혹함을 표현할 수 있을까. 차리리 짐승이었다면 견디기가 낫지 않았을까. 속절없이 지진에 당한 아이티인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생각 없는 미물이었다면 차라리 참담함이 덜 했을 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이들에겐 아무 것도 없었다. 당장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돌아갈 집도, 함께 할 가족도 없었다. 무엇보다 이들이 존엄한 인간으로 돌아갈 미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실로 아뜩한 절망이었다.
900여만명의 아이티인. 이들은 지진 이후 정신이 나간 듯 했다. 날이 밝으면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미군이 있는 곳으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곳으로 휩쓸려 갔다. 먹을 것 한쪽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절박함에 짓눌려 적의에 찬 몸짓으로 서로 치고 받으며 앞줄로 나가려 몸부림을 쳤다. 외국인만 보면 갈망의 눈초리로 주변을 맴도는 이들에게 자존은 아득한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18일(현지시간) 포르토프랭스의 국립병원. 1,500여명이 병원 밖 임시천막촌에서 치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돌리면 100m 남짓 떨어진 곳에는 시신들이 뒹굴었다. 적게는 대여섯구, 많게는 20여구 가까운 시신이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 버려져 있다. 어른 아이 여자 남자 가릴 것 없이 아랫도리까지 드러낸 채 퉁퉁 불은 시신은 차마 쳐다보기가 어려웠다. 그 옆을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며 지나갔다. 뭔가로 덮어줄 생각도, 전염병에 대한 우려도 없는 듯 했다.
포르토프랭스에서 10km 거리의 까르푸. 진앙과 가까워 이번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이다. 길가 양쪽의 건물은 거짓말처럼 모두 무너져 내렸다. 그 사이로 사람들이 물결처럼 몰려갔다 몰려왔다. 영화세트같은 현실. 아니 현실이라면 이럴 수는 없었다.
한국의 종로라는 포르토프랭스의 델마거리. 이곳도 경사진 지역에 타운이 들어선 지형 탓에 희생이 컸다. 시장이었던 곳으로 보이는 곳에서 한 여인이 미친 듯이 소리쳤다. "모든 것이 무너졌다. 먹을 게 없다." 제정신이 아닌 듯 했다. 그 옆에서 다른 여인은 손때가 잔뜩 묻은 허름한 옷을 팔려고 필사적으로 사람들에게 매달렸다. 젊은 여성들은 길거리 한복판에서 치마를 내리고 아무렇지 않게 대소변을 보고, 또 옷을 벗고 몸을 씻었다. 하지만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시내 곳곳에서 벌어지는 구조의 현장. 생존자 수색은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사망자를 잔해더미에서 끌어내는 작업도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보이지 않는 죽음은 죽음이 아니었다. 포클레인으로 콘크리트 더미에 섞인 시신을 푹 떠서 덤프트럭에 쏟는 것으로 현장 정리는 끝난다. 세계 각지에서 물밀 듯 구호품이 들어오지만 폭동 우려에 배급은 지연되고 있다.
아이티인들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운전을 하던 현지인 제롬은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아이티는 죽었습니다."지금은 절망이 너무나 컸다.
포르토프랭스=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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