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11월에 들어서면서 개각설이 신문에 오르내리더니 드디어 12월 5일 개각이 단행되었다. 총리는 이현재 씨에서 강영훈 씨로, 경제부총리는 라웅배 씨에서 조순 씨로 바뀌고 재무에 이규성, 농수산에 김식, 상공에 한승수, 노동에 장영철, 교통에 김창근, 내무에 이한동 씨가 임명되고 나는 건설부 장관으로 옮기에 되었다.
최병렬 정무수석이 문공부를 맡게 되었으니 청와대 비서실에서는 나와 최병렬 두 사람이 빠져나오게 되었고 나의 후임 경제수석에는 문희갑 경제기획원 차관이 임명되었다. 10개월 간의 청와대 생활을 되돌아보니 최선을 다해 뛰어다녔지만 별로 한 일도 없고 힘 있는 실세 참모역할도 하지 못한 것 같다.
노태우 대통령은 내게 그 동안 청와대에서 200만호 주택건설의 계획을 맡아 세웠으니 이제 일선에 나가 그 집행을 맡아 하라는 말씀이었는데 나로서는 예기치 못한 일이었을 뿐 아니라 처음 당면하는 행정 집행 업무를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제20대 건설부 장관의 임명장을 받고 과천청사에 갔더니 전임 최동섭 장관은 이 취임식을 같이 하자고 기다리고 있었다. 최 장관은 성품이 매우 후덕한 분으로 내가 청와대 수석으로 있을 때부터 업무상으로 긴밀히 협조해오던 터였다. 그 분은 그 분의 국무위원 배지를 떼어 내게 달아 주고 떠났는데 그 후 토지개발공사 이사장으로 임명되어 다시 만났다.
88년 중 꾸준한 상승세를 지속한 부동산 시장은 89년 초부터 급등세로 돌변하였다. 고도성장에 대한 기대, 누적된 무역흑자로 인한 외화유입, 연 20%의 통화팽창 그리고 아파트 분양만 받으면 불로소득이 생긴다는 투기 심리 등이 어우러져 자고 나면 땅과 집값은 오르고 주가도 치솟았다.
전국 땅값은 88년에 27% 오른 데 이어 89년에는 32% 올랐으며 주택가격은 88년에 21% 올랐는데 89년에 들어서서는 연초부터 급등세로 돌아서서 투기양상을 나타냈다.
이와 같이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문희갑 수석은 이미 개발이 확정된 평촌과 산본 외에 분당까지 개발하자고 제의해 왔다. 내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서 200만호 건설을 위한 신도시 개발계획을 세우면서 분당 평촌 산본 중동 등 네 개 지역의 동시개발을 검토했으나 당시 건설부의 요청으로 평촌과 산본만 먼저 개발키로 했었다는 것을 앞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내가 건설부의 행정책임을 맡아 상황을 판단해보니 분당과 중동의 개발을 미룰 필요가 없었다. 나는 흔쾌히 문수석의 제의에 동의하고 나아가 경기 북부에도 신도시 하나를 지어야 하겠다고 역제의 했다.
앞에 말한 4개 지역은 오래 전부터 신도시 개발이 논의되어 왔지만 경기 북부에 신도시를 짓는다는 것은 처음 나오는 발상이었다. 지금은 고양 교화 등 경기 북부지역의 신도시 개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 때만 하더라도 1967년 1.21 김신조 사건 이후 안보상의 불안 때문에 강북은 기피지역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강북지역의 신도시 건설에는 건설부 내에서도 반대가 많았었다. 문희갑 수석은 그 문제는 건설부에서 알아서 하라면서 적어도 청와대에서 반대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내가 경기 북부지역에 신도시를 지어야 하겠다고 생각한 첫 번째 이유는 안보상의 불안에 대한 역발상이다. 우리는 냉전시대의 대결에서 벗어나 화합과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
그렇다면 안보상의 불안 때문에 경기 북부지역을 기피할 것이 아니라 이곳에 신도시를 지어 안보상의 불안을 제거하고 남북교류의 교두보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 다음의 이유는 서울의 강남북간 균형발전을 위해서였다.
이러한 발상이 가능했던 것은 내가 40년 동안이나 서울과 경기도의 접경인 강북의 은평구에서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나는 여기저기 드라이브하기를 즐겨 틈만 나면 가족들과 같이 문산 연천 철원 일동 이동 등을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일산 고양 의정부 포천 등의 지리를 잘 알게 되었고 특히 경제수석이 되어 신도시 건설계획을 짜면서부터는 신도시 입지로 어디가 좋은가를 늘 머릿속에 그리고 다녔다. 그 결과 일산지역과 의정부 북쪽지역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나는 토지개발공사에 서울에서 북쪽으로 두 개의 신도시 후보지를 물색하되 하나는 동북쪽 방향에서, 하나는 서북쪽 방향에서 선정하도록 요청했다. 그 결과 양주와 일산 두 곳을 선정해왔다.
양주는 양주읍 삼송리 고읍리 일대(구 주내면 옥정면 일대) 약 600만평의 낮은 구릉지대로서 입지조건은 그만이었다. 이곳은 레이크우드(구 로얄) 골프장 바로 앞에서 북쪽으로 펼쳐진 땅인데 골프장 클럽하우스 바로 앞이 그린벨트 경계선이다.
동쪽은 胎?쪽으로 산맥이 병풍을 치고 있고 그 안의 넓은 땅은 매우 낮은 야산이어서 도시개발의 최적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교통이 문제였다. 지하철은 큰 문제가 없으나 도로교통 문제의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 결정적인 결점이어서 유보되었다.
여기 비해 일산은 확 터진 지역이다. 한강을 끼고 있고 육상교통 환경도 매우 양호하며 해운과 항공교통의 접근성도 좋아 물류기지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다만 이곳은 해발 6미터로 낮은 것이 험이라 하겠는데 이 문제는 돋우면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산을 5대 신도시 중 최적의 입지로 꼽고 여기에 새 도시를 짓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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