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외인으로 김시습은 뛰어난 시인이었을 뿐 아니라 주목할 만한 기일원론(氣一元論)의 자연 철학자였다. <귀신론> 이라면 낯선 느낌을 주지만 유교입국(儒敎立國)이란 정치 사회적 배경에서 발달하여 조선 초기의 학자 성현과 김시습을 비롯하여 서경덕ㆍ이율곡에서 19세기의 최한기에 이르기까지 40여 편 넘게 써내려 간 철학 산문이다. 귀신론>
조선 건국 초기에는 주로 고려 불교의 귀신 풍속을 공격하고, 유교적 제사의 질서를 확립한다는 논거를 마련하고, 15세기의 김시습에서 서경덕으로 이어지는 기일원론의 자연철학을 성숙시켰다.
김시습은 <신귀설(神鬼說)> 과 소설 <남염부주지> 를 써서, 기(氣)가 변하는 이치로 귀신론을 폈다. 여기서 그는 "하늘과 땅 사이는 오직 하나의 기의 풀무이다"라고 하는 명제 아래, 제사 받는 신(祭祀之神)과 조화의 신(造化之神) 곧 하느님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논리를 체계화했다. 남염부주지> 신귀설(神鬼說)>
따라서 천지만물은 본체가 하나이기에 결국 사람이 죽어 기가 흩어진 뒤에 저승에 가거나 응보를 받을 어떤 존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뚜렷이 했다.
김시습에게 '신(神)'이란 바로 자연의 순환 작용을 뜻했다.(「體元贊」) 곧 음양이기(陰陽二氣)의 작용하는 이치가 도(道)이며, 도에서 나왔으므로 작용이 생긴다는 뜻이다. 기의 작용은 돌고 도는 것이 이치인데, 이렇게 그침 없이 변화하는 것이기에 신묘하여 신(神)이라고 한다.
그는 "만민은 나의 동포이며, 만물은 나의 동반자다"라는 북송의 기철학자 장재(張載)의 말을 이끌고 있는데, 이것이 그의 자연철학과 사회철학이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뚜렷이 해주는 대목이다.
'나'라는 미미한 존재가 하늘 아버지와 땅 어머니 가운데 살고 만민과 동포가 되니, 우리의 몸이 우주의 몸이 되고 우리의 성(性)이 우주의 성이 된다.
우주를 부모 섬기는 도리로 제사하는 이치가 여기에 있고, 자연 순환에 따르는 천인합일의 사상이 여기에서 나온다. 따라서 조상제사나 천지 산천에 드리는 감사의 예도 천지만물과 생명의 일체감을 나타내는 제사의 원리라 할 수 있다.
이런 조선조의 귀신론은 기 철학으로 우주론이며 삶과 죽음의 철학이어서 '사생(死生)'이란 말을 앞에 붙여 <사생귀신론> 이라고도 썼다. 김시습과 함께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가장 친했던 남효온(南孝溫,1454-1492)의 〈귀신론〉을 함께 읽으면 귀신론이 본체론과 인성론에 걸쳐 있고, 조선 성리학의 사생관이 기철학으로 발전된 모습을 가늠할 수 있다. 사생귀신론>
"귀(鬼)란 돌아간다[歸]는 뜻이며, 신(神)이란 펼쳐진다[伸]는 뜻이다. 그렇다면 하늘과 땅 사이에 와서 펼쳐지는 것은 모두 신이며, 흩어져 돌아가는 것은 모두 귀신이라 할 수 있다.(鬼者歸也, 神者伸也. 然則天地之間, 至而伸者, 皆神也. 散而歸者, 皆鬼也)"(남효온;<귀신론> ) 귀신론>
남효온은 성리학 전통의 글자풀이로 귀신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천지 사이에 펼쳐지고 흩어져 돌아가는 자연 변화의 개념으로 김시습의 기일원론을 이어 후세에 전했다.
동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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