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을 시켰는지 목에 뽀얗게 분을 바른 아이가 하나, 사람의 알인 아이가 하나 해질 무렵 골목길 문간에 나앉아 터질 듯한 포도알을 한 알씩 입에 따 넣고 있었다 한 알씩 포도라는 이름이 그의 입 안에서 맛있게 지워져 가고 있었다 이름이 지워져 간다는 것이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포도를 먹는 아이_알ㆍ7'에서)
정진규(71) 시인이 올해로 등단 50주년이 됐다.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특유의 철학적 사유와 심미적 감각으로 한국 현대시에서 독자적 영역을 구축해 왔다. 한국시인협회장(1998~2000)을 지냈고 월간 '현대시학' 주간을 22년째 맡고 있는 시단의 중추이기도 하다.
15일 서울 종로구 현대시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50년 동안 한 길을 줄곧 걸어왔다는 사실에 스스로 대견하다"며 "시인으로 사는 게 쉽진 않았지만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감회를 밝혔다. 교사, 회사원 생활을 거쳐 지금의 잡지사 경영에 이르기까지 등단 이래 늘 노동을 해온 시인의 이력을 떠올리면 그의 성실한 작품 활동은 더욱 빛을 발한다.
정씨의 시 세계는 '몸 시(詩)'와 산문시로 대변된다. 몸시는 그가 "정신과 육체, 시간과 영원이 합일된 세계가 몸이며, 이런 몸의 총체성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시"라는 특유의 시론에 기반해 만든 말로, 시집 <몸詩> (1994) 발간으로 널리 알려졌다. 평론가 유성호씨는 "몸시는 사물의 미동(微動)을 감각적으로 포착해 존재의 근원으로 사유를 확장하는 방식을 취한다"고 설명한다. 산문시라는 형식 면에서 정씨는 1970년대 후반부터 행갈이 없이 시적 리듬을 구현하는데 힘써 왔다. 정씨는 "요즘 시인들 사이에서 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산문시 양식이 보편화됐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시 잡지를 만들면서 자연스레 젊은 시인들을 많이 읽고 공부한다"는 그는 김기택, 이덕규, 손택수, 문태준, 김경주씨 등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요즘 시는 감각이 신선하고 소재가 다양하지만 그렇다보니 질서가 흐트러질 때가 있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몸詩>
그는 오랜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2007년 경기 안성시 생가로 이사했다. 택호를 석가헌(夕佳軒ㆍ저녁이 아름다운 집)으로 정하고 직접 쓴 현판을 달았다. 그의 붓글씨는 아호 경산(絅山)을 따서 '경산체'로 불릴 만큼 정평이 있다. 음악, 무용에도 조예가 깊어 2006년 고려대에서 열린 조지훈 시비 제막식 때는 50m짜리 천 위에서 풍물에 맞춰 붓으로 즉흥시를 쓰는 '먹춤' 공연을 하기도 했다.
정씨는 "자연과 밀착해 살면서 또다른 시의 세계를 발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그가펴낸 14번째 시집 <공기는 내 사랑> 을 들추면 씨앗을 심다가 흙의 관능적 감촉에 감동하고('씨를 뿌리다'), 가을에 익힐 것만 남기고 감을 떨어내는 감나무를 보며 인생을 되돌아보는('풀 뽑다 말고') 시인을 만날 수 있다. 그는 "4년에 한 번 꼴로 내던 시집을 귀향 후 2년 만에 냈다"며 "올 상반기엔 첫 동시집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기는>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