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 속에서 간신히 먼지투성이 얼굴만 드러난 11세 아이티 소녀는 고통으로 희미한 신음을 내며 구조대원이 건넨 물을 간신히 삼켰다. 파묻힌 한쪽 다리에 큰 쇠 조각들이 파고들어 무리하게 구조를 시도했다가는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
지진 발생 후 이틀이 흘러간 14일(현지시간) 저녁, 구조대원들이 한쪽 다리 절단을 고민하던 그 때 누군가 기적적으로 전기톱과 소형 발전기를 구해와 잔해 제거작업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미국 CNN 방송이 구조상황을 생중계, 전세계의 관심을 모았던 소녀는 그로부터 약 2시간 후 다리 절단 없이 구출됐다. 소녀의 부모는 응급처치 후 포르토프랭스에서 3시간 거리에 있는 큰 병원으로 아이를 서둘러 옮겼다.
그러나 아이티에는 기적보다 비극이 훨씬 많이 벌어지고 있다. 9세 소녀 아리사 킴 클레르쥬는 무너진 자기 집에 갇혀 이틀 동안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구조대원이 간신히 아리사에게 물을 건넬 위치에 접근한 순간 애원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마지막 외침이 들린 지 몇 시간 후 아리사는 싸늘한 시신이 돼 무너진 건물 더미 사이에서 수습됐다고 AP통신이 전했다. CNN은 가족과 친구들이 매몰된 건물 앞에서 구조대원들에게 "나도 여기에 함께 묻어달라"고 오열하는 청년을 보도하기도 했다.
매몰자의 생사가 갈린다는 '운명의 72시간'이 끝나가지만 구호활동은 대부분 막대기와 망치에만 의존하는 상황이다. 세계 각국의 구호인력과 지원물자들이 대거 아이티로 향하고 있지만 무너진 항만과 활주로가 하나 밖에 없는 공항 탓에 수송이 지연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5일 보도했다.
그사이 거리에 방치된 시체들은 이미 부패하기 시작했다. 아이티 적십자는 희생자 5만명 이상으로 추정했지만 여전히 10만명을 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강진 발생 3일만에 아이티는 생지옥으로 변해가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60대 한국인이 사업차 10일 아이티에 도착했으나 12일부터 연락이 두절됐다고 미주 중앙일보가 14일 보도했다
한편 주요20개국(G20) 회원국들이 금명간 아이티에 대한 국제지원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할 것으로 15일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14일 멕시코에서 G20 셰르파(사전 교섭대표)들이 모여 긴급 의제로 아이티 문제를 거론했고 조만간 성명을 채택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은 30대 그룹 회장단과의 조찬간담회에서 "G20 국가들이 만난 것은 아니지만 서로 연락해서G20 국가들이 지원하자는 결의를 했다"고 소개했다.
서울시도 이날 아이티에 10만 달러와 긴급구호 물품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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