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등굣길, 까까머리 중학생들이 하나밖에 없는 학교 앞 이발소로 줄지어 들어갔다. 휴일의 달콤함에 빠져 두발 단속에 대비하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말이 이발이지 '바리캉'으로 슥슥 밀어 박박머리를 만드는 게 전부였다. 교문 닫는 시간이 가까워지면 스스로 머리를 감거나 머리만 깎고 자리를 뜨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덩달아 이발사의 손놀림도 빨라졌다. 하지만 날이 무뎌진 탓인지, 모두의 마음이 조급해진 탓인지 바리캉에 머리카락이 걸려 통째 뽑히는 일이 잦아졌다. 가뜩이나 혼잡했던 이발소 안은 아이들 비명까지 더해지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소란한 이발소를 지나 여유롭게 등교하던 아이들도 교문에서는 긴장했다. 선도부 학생들은 자를 들고 머리카락 길이를 쟀다. 학생지도 교사도 바리캉으로 두발 단속에 걸린 아이들 머리에 '고속도로'를 내느라 바빴다. 반항하면 고속도로는 2개가 됐다. 머리가 요철(凹凸) 모양이 된 아이들은 하굣길에 이발소로 직행했다. 하지만 고속도로에서 머리카락이 자랄 때까지 버티는 아이들도 있었다. 교사가 1부(1㎜) 바리캉 날을 썼기 때문에 2부(2㎜) 길이로 이발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비록 1㎜ 차이였지만 아이들에겐 창피를 참아도 될 만큼 가치있는 길이였다.
▦아이들은 후크(고리) 달린 검정 교복과 박박머리가 일제의 잔재라는 사실을 알기에 바리캉도 일본 물건이라 생각했다(바리캉은 프랑스의 '바리캉 & 마르'사 제품이 국내로 들어오면서 회사명이 제품명이 된 것이다. 정확한 명칭은 '헤어 클리퍼ㆍhair clipper'다.). 아이들은 해방 후 30년이 지났는데도 교복과 두발은 왜 일제 때 그대로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두발 단속에 걸릴까 봐 머리를 삭발하고 단속에 걸려 머리에 고속도로가 생길 때 아이들 마음에는 상처가 났다. 그러나 어른들은, 지금도 그렇지만,'옛날에 우리도 그렇게 컸어'라는 투로 무시했다.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이 결연한 모습으로 삭발하는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며칠 뒤, 그 중 한 의원이 겸연쩍은 듯 삭발 머리를 만지며 웃는 모습이 보도됐다. 대중 앞에서의 삭발은 삭발자 의지를 극대화해 보여준다. 그러나 삭발 후의 웃음이나 착모는 삭발의 의지와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필름을 거꾸로 돌려 웃는 모습을 먼저 보고 삭발 장면을 보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삭발의 엄숙함과 절박함을 유지할 자신이 없다면 차분하고 냉정한 대응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바리캉 삭발은 아무래도 국회의원과 잘 안 어울리는 것 같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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