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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가족을 그리다' 당신 가족의 초상은 어떠한가

입력
2010.01.16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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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택 지음/ 바다출판사 발행ㆍ288쪽ㆍ1만3,800원

어울리지 않는 두 명제가 한 데 담겨 버그러진다.

'가족은 그렇게 목숨의 가장 근원적이고 본능적인 욕구를 함께 채워 나가는, 도모해 가는 이들이다'가 하나의 명제이고, '예술가는 세계와 현실에 대해 불만이 많은 자들, 의심이 많은 자들이다'가 두 번째다.

핏줄을 향한 끌림이 척추동물의 본능이라면, 동물성을 벗으려는 정신의 원심력이 예술일 것이다. 섬세한 시선과 윤택한 문장을 지닌 미술평론가 박영택씨가 쓴 이 책은 그 두 세계가 만나는 접경을 표현한 소묘다.

서두에 솔직히 밝혔다. "우선 엄청나게 비가족, 심지어 반가족적인 내가 뜬금없이 가족에 대한 글을 쓴다는 사실이 내내 거북하고 불편했다."

대충 표지만 보고 미술에 담긴 가족의 따스함을 확인하려 덤빈 독자는 여기서 책을 덮으면 된다. 저자가 인용하는 철학자 엘리자베트 바댕테르의 얘기를 들어보자. 저자의 머릿속에,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110여 점의 작품에 담긴 가족의 정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모든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본능적인 사랑을 갖는다'는 모성 신화는 18세기 말 유럽에서 등장한 새로운 개념이다. 이것은 '좋은 국민'의 효율적 증산을 위해 여성을 '좋은 어머니'로 육성해야 한다는 논의가 고조되면서 생겨났다. 국가는 모성에 의탁해 '조국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을 길러 내야 했던 것이다."(103쪽)

동서양의 전근대 회화를 분석하는 이 책의 앞부분은 다소 현학적이다.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과 근대적 가족 개념의 탄생을 연결시키거나, 조선 인물화에서 유교적 가족관을 짚어낸다.

본격적인 논의는 20세기 한국 회화 분석에서 시작된다. 피아노가 놓인 거실에 단아하게 앉은 부인을 그린 이유태의 '화음'(1940), 아이를 업은 누이를 묘사한 박수근의 '아기 보는 소녀'(1963) 등에서 가족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점을 읽어낸다.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서 미술 속 가족을 조명하는 저자의 작업은 곧 "한국인의 내면세계, 일종의 트라우마를 엿보는 기회"다.

저자는 식민시대와 한국전쟁, 이농 등 현대사의 굴곡이 가족을 묘사한 그림에 투영되는 과정을 차례차례 짚으며 보여준다. 그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인력도 절감하는데, 모더니티도 그 앞에서는 무력함을 목격한다.

"장욱진의 그림은 어느 현대 미술사조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유화 물감을 의도적으로 묽게 사용해 수묵화의 담백성과 투명성에 접근하면서… 그러나 장욱진의 그림에는 항상 가족이 중심을 차지한다."(157쪽)

1990년대 이후의 미술 작품에서는 '흔들림'이 주된 테마로 등장하며 가족 해체와 국제 결혼, 동성 결혼 같은 소재가 빈번해진다.

저자는 "가족을 다룬 이미지에는 한 사회의 모든 것이 응축되고 저장돼 있다. 가족을 소재로 한 한국 미술 속에는 전통과 현대의 현기증 나는 교차, 변질의 시간을 체험해 온 한국 근현대사의 표정이 적나라하게 엉켜 있다"고 결론짓는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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