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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중부서 오성존 경위, 결백 밝히고도 못 이룬 '현장 복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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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중부서 오성존 경위, 결백 밝히고도 못 이룬 '현장 복귀의 꿈'

입력
2010.01.15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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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라도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소원인데…."

한 경찰관이 8년간의 외로운 투쟁 끝에 비리 경관의 누명을 벗고 복직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져 명예퇴직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매서운 동장군이 몰아친 14일 오후 경남 창원시의 한 병원에 입원 중인 창원중부경찰서 오성존(54) 경위 곁을 지키고 있는 부인 조행녀(53)씨는 "3월 말로 병가와 질병휴직기간이 끝나 하는 수없이 명예퇴직을 신청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 맺힌 복직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질병휴직기간 연장을 신청했지만 국가공무원복무규정상 더 이상 연장은 불가능하다는 경찰의 답변에 내키지 않는 명예퇴직 신청서를 낸 조씨는 병상에 누워 있는 남편 이상으로 복직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조씨는 "금방이라도 훌훌 털고 일어나 걸어 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 반신불수의 신세로 경찰 생활을 마감한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며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1980년 순경으로 경찰에 투신한 뒤 수사 분야 베테랑으로 현장을 누비며 3남매를 키우는 40대 가장이었던 오 경위는 창원중부서 수사과에 근무하던 2000년 11월 검찰에 구속됐다.

이 경찰서로 발령받기 직전 경남경찰청 수사과에 근무할 당시 유사석유 및 해상용 고유황 경유 불법 판매 수사와 관련해 업자로부터 사건 무마 청탁 명목으로 500만원을 받았다는 혐의가 씌워졌다. 오 경위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2002년 6월 대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500만원의 형이 확정돼 결국 경찰 옷을 벗었다.

그러나 오 경위는 "하늘이 두 쪽 나도 판결에 승복할 수 없다"며 무죄 입증을 위한 길고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관련 서류 수집을 위해 경찰서와 법원, 변호사 사무실을 발이 부르틀 정도로 찾아다녔고 밤을 새워 가며 서류를 정리하고 증인들을 찾아 읍소했다.

사필귀정이었을까. 오 경위는 당시 재판에서 증인들이 석유사업법 위반 사건에 관한 처벌을 가볍게 받을 목적으로 거짓 증언을 한 사실을 밝혀냈고 이들은 2005년 5월 창원지법에서 벌금형을 선고했다. 오 경위는 이를 토대로 2005년 7월 1일 창원지법에 재심을 청구했고 2007년 1월 꿈에도 그리던 무죄 판결을 이끌어 냈다.

검찰이 이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2008년 9월 이를 기각하고 오 경위의 손을 들어 줬다.구속된 지 8년, 대법원 판결 6년 만에 비리 경관의 누명을 벗은 것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애타게 복직 발령을 기다리던 오씨는 2008년 10월 4일 "잠시 외출하고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병원에 입원한 지 1주일 만에 복직 결정을 받고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해 가던 오 경위에게 또 한번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지난해 1월 뇌경색이 다시 찾아와 상태는 더 악화한 것이다. 말 한마디도 못한 채 병상에 누워 있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오 경위의 가족들을 더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공무원연금공단이 공무상 요양을 인정하지 않은 것.

가족들은 뇌물 수수 혐의 재판 과정에서 받은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뇌경색의 원인이라며 2008년 12월부터 세 차례 공단에 공무상 요양을 신청했지만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부인 조씨는"세상에 멀쩡한 사람을 (국가가) 죽여 놓고 공상 인정이 안 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라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가족들은 실낱 같은 희망으로 지난해 11월 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지만 공단 측은 '불승인 통보는 적법하다'는 내용의 답변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제 눈물로 말라 버렸다"는 조씨는 반듯하게 자라 준 아이들(3남매)에게서 그나마 위안을 얻는다고 말했다.

조씨는"현재 대학생인 된 막내아들은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둘째 딸은 중학교 3학년, 큰딸은 대학 1학년이었는데 만신창이가 된 가정에서도 비뚤어 지지 않고 곱게 자라준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남편이) 머지않아 혼자서 걷고 자유롭게 말도 할 것 같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오 경위는 정상적 식사를 하며 하루 두 차례씩 고된 재활 치료와 작업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오 경위지만 '직업이 무었이었습니까'라는 재활 담당 의사의 물음에는 "경찰"이라고 답해 보는 이의 마음을 더 안타깝게 하고 있다.

창원= 이동렬 기자 d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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