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베일에 쌓여있던 용산참사 비공개 수사기록 2,000여 쪽이 공개된다. 1심 에서 장기간 재판 파행의 원인이 됐던 수사기록이 공개됨에 따라 항소심에서 본격적으로 용산참사의 화인(火因)과 경찰진압의 적법성 등 논란이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용산참사 농성자들의 항소심을 담당하는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 이광범)는 13일 "1심 법원에서 이미 판단이 이뤄진 증거개시 결정에 포함된 기록에 대한 열람ㆍ등사 허용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앞서 1심 재판부도 수사기록에 대해 공개결정을 했지만, 검찰이 거부함에 따라 공개가 이뤄지지 않은 채 선고가 내려졌다.
항소심에서 기록 공개가 가능하게 된 것은 용산참사 기록이 모두 이미 법원에 제출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용산참사 유족들이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고발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을 검찰이 불기소하자 법원에 재정신청을 했고, 검찰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관련 서류를 모두 재정신청 사건을 담당하는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정덕모)로 보냈다.
변호인은 이달 초 열린 용산참사 항소심 공판준비기일에서 "법원에 보관 중인 수사기록을 열람ㆍ복사하도록 해달라"고 요구했고, 검찰은'재정신청 서류를 공개하는 것은 명백한 형사소송법상 위반이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형사소송법상 재정신청 관련 서류는 열람 등사가 금지돼 있다.
서울고법은 그러나 김 전 청장의 사건을 용산참사 항소심 재판부에 재배당했고, 재판부는 공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역시 '검사가 거부한 서류에 대해 법원이 공개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에 근거한 것으로, 외관상 법률이 상호 충돌되지만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및 실체적 진실 규명에 중심을 두고 공개 결정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새로 공개될 기록이 1심 판결을 뒤집을 만한 위력이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검찰이 애초 기록 공개를 거부한 공식적인 이유는 '모든 수사기록을 공개할 필요는 없다'는 형사소송법 규정 때문이었다. 비공개 기록에는 1심에서 인정된 사실을 뒤집을 만한 내용보다는, 화재 당시 혼란한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경찰 특공대원들의 상반된 진술이 들어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변호인 측은 그러나 "14일 재판부에 찾아가 기록을 열람 복사할 것"이라며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이 아닌 다른 화인에 의해 화재가 발생했고, 경찰 진압이 부적절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변호인 측은 특히 진압 당시 경찰지휘라인의 통신내역이나 용역들과 공조했다는 내용 등, 경찰 진압의 정당성을 배척하는 진술이 포함돼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검찰은 "법원에서 명백히 위법사항인데도 불구하고 (공개가) 허용되면 검찰이 할 수 있는 조치를 파악해 취하겠다"고 밝혀, 향후 법원ㆍ검찰간 갈등으로 비화할 것임을 예상케 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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