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올빼미 국회다."
14일 새벽,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풍경을 두고 한 얘기다. 교과위는 이날 새벽 1시15분쯤 전체회의에서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관련법을 의결했다. 보름 전에도 여의도 금배지들은 '야행성'임을 재차 확인시켰다. 12월 마지막 날과 새해 첫날을 가르는 자정 전후 예산안과 노조법이 가까스로 통과됐다.
의원들이 깊은 밤에라도 대화하고, 생산적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면 욕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낮 회의에서 충분한 토론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 큰 문제다. 일부에서 "낮에는 무슨 일 하다가 밤만 되면 바쁜 척 하느냐"고 비아냥거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의도 국회의 특징은 또 있다. 말싸움, 몸싸움, 날치기다.
다수결과 소수의견 존중이란 국회 운영의 두 가지 원리는 별로 힘을 쓰지 못한다. 토론보다 싸움이 앞선다면 국회의원을 다른 기준으로 뽑아야 한다. 몸싸움에서는 격투기 선수, 말싸움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의 대표기관을 이렇게 놔둘 수야 없다. 게다가 행정부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지났다. 때문에 국회 바로 세우기가 시급하다.
한국일보가 최근 여야 3당 대표와 가진 연쇄 인터뷰에서 국회개혁 방안을 화두로 올린 것은 이런 취지에서 비롯됐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정세균 민주당 대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처방은 제각각이었다. 전문가들도 갖가지 국회 수술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결국 해법은 기본에서 찾는 수밖에 없다. 여야 모두 룰을 지키면서 충분히 대화와 토론을 해서 타협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래도 접점을 찾지 못하면 다수결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다수당은 소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신사 정치 문화가 정착되려면 여야 모두 '룰을 지켜야 산다' 고 느낄 수 있도록 정치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회 의석의 적정한 배분이 필요하다. 의석 격차가 너무 크면 야당은 규칙에 따라 토론하고 표결하는 것을 꺼리게 될 것이다. 백전백패가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나라당 의석은 169석으로 민주당의 87석보다 두 배 가량 많다. 한나라당이 헤비급이라면 민주당은 라이트급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선 정상적 게임이 이뤄지기 어렵다. 최근 우리 정치사를 보더라도 그렇다. 노태우 대통령이 이끄는 여당과 3김씨가 각각 이끄는 3개 야당이 의석을 고루 나눠가진 13대 총선(1988년) 직후에는 모처럼 대화 정치가 만발했다. 일부에선 '황금분할'이라고 말했다. 반면 의석의 쏠림 현상이 뚜렷했던 국회에서는 오히려 물리적 충돌이 잦았다.
물론 인위적으로 의석을 배분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지나치게 바람에 휩쓸리는 '부화뇌동' 투표 행태를 지양하고 냉철하게 판단해 투표한다면 자연스럽게 적절한 의석 배분이 이뤄질 것이다. 유권자들은 '순간의 선택이 4년을 좌우한다'는 생각으로 투표에 임해야 한다.
2004년 17대 총선 석 달 전만 해도 열린우리당이 100석 이하를 얻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갑자기 '탄풍'(彈風 ∙탄핵 바람)이 불면서 열린우리당은 과반 의석을 얻었다. 2008년 18대 총선 때는 'MB 바람'으로 한나라당이 절대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선거 때는 국회 룰을 지키지 않고 싸우는 의원들은 찍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바람에 표심이 출렁이는 '밀물썰물 투표행태'가 없어져야 몸싸움 국회도 점차 사라질 것이다.
김광덕 정치부장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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