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말 스위스의 휴양도시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 이른바 다보스포럼은 이명박 대통령과 묘한 인연을 갖고 있다. 처음엔 악연으로 시작됐다. 서울시장 시절인 2006년 그가 이 포럼에 참석해 가진 특별연설이 설화에 휘말려서다. 문제의 발언은 "최근 일부 아시아 정치지도자들이 과거 역사에 얽매여 (대화를 기피하는 등) 국가간의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아시아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는 것. 참여정부의 대일 강경론을 꼬집는 듯한 이 발언에 당시 청와대는 '친일 망언'이라고 몰아붙였고, 이 시장 측은 대선가도를 해칠 목적으로 말뜻을 왜곡ㆍ악용한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 이 경우를 빼면 다보스와 이 대통령은 죽이 잘 맞았다. 취임 첫 해인 2008년 8ㆍ15 경축사에서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으로 제시한 '저탄소 녹색성장'은 대표적 예다. 2000년 1월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처음 내놓은 이 개념은 다보스포럼에서 수년에 걸쳐 풍성하게 살을 찌웠다. 지구 온난화 등 환경오염과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성장의 한계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녹색기술과 청정에너지가 부각되고 환경과 성장, 보전과 개발이 함께 가는 21세기 신성장동력으로 자리잡기에 이른 것이다.
▦ 지난해 다보스의 주제는 '위기 후 세계 경제질서 재편'이었으나 이 대통령은 일정상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현지에서 전경련이 주최한 'Korea Night 2009'에 보낸 영상메시지를 통해 "우리 모두 글로벌 경제위기의 한가운데 서 있지만 두려워하기보다는 이 위기가 하나의 역사적 기회임을 인식해야 한다"며 한국이 위기 극복의 국제 협력에서 적극적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위기 국면에서 빛을 발한 우리 경제나 G20 정상회의 유치 등의 외교 실적을 보면 이 대통령으로선 이 발언이 '다보스 이니셔티브'였던 셈이다.
▦ 올해 40돌을 맞는 WEF는 '세계의 상태를 개선하라:다시 생각하고 다시 디자인하고 다시 건설하라'는 주제로 27일부터 5일간 열린다. 경제위기 온난화 테러 빈곤 질병 등 심각한 도전과 위험에 직면한 세계를 개선하려면 세계의 정ㆍ재ㆍ학ㆍ언론ㆍ종교계 지도급 인사들이 진정한 공동체를 이뤄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취지다. 글로벌 외교 강화를 국정운영 기조의 하나로 내건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이 포럼에 참석, 이니셔티브를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시기에 열리는 좌파 대안포럼인 세계사회포럼(WSF)도 잘 봤으면 좋겠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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