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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공짜 점심의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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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공짜 점심의 경로

입력
2010.01.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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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곳에 훌륭한 왕이 세상을 바르게 다스릴 최고의 지혜를 신하들에게 찾아오도록 했다. 신하들이 찾아온 내용을 보니 너무 방대해서 딱 한 줄로 줄이게 했다. 그 구절을 왕은 반지에 새겨서 늘 삶의 지침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기쁜 일도, 참담한 일도 길게 보면 큰 일이 아니니 너무 낙담하지도, 경거망동하지도 말라는 우화이다. 솔로몬 왕의 일화로 유대교 경전인 <미드라시> 에 실렸다고도 하고 미국의 종교시인 그레이스 크로웰(1877~1969)이 쓴 시의 한 구절이라고도 한다.

공짜 바라지 않아야 자립

미국 과학저술가 앨런 와이즈먼이 쓴 <가비오따스> 라는 책에도 비슷한 우화가 실려 있다. 어느 왕이 나라의 지혜로운 사람을 다 불러들여서 세상의 모든 지혜를 적게 했다. 그 결과가 백과사전 한 질이라 왕이 줄이고 줄이게 했더니 딱 한 줄로 줄여지더라는 것까지는 같은데 결론이 다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가비오따스> 는 콜롬비아의 황량한 사바나 지역에 풍요로운 생태공동체를 세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이 책에는 제3세계 경제의 경쟁력 강화에 대한 유엔개발계획(UNDP) 회의에서 발제강연자가 이 이야기를 한 것으로 나온다. 원래 출전은 알 수 없지만 오래된 왕의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결말을 보면 제3세계에 쏟아지는 지원금을 공짜로 여기지 말고 분발하라는 뜻에서 발제자가 우화를 각색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원금을 공짜로 여기는 나라는 가난을 못 벗어나지만, 공짜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나라는 발전한 것을 보면서 발제자에게는 이것이 '절대지혜'였을 것이다.

국제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이 절대지혜를 가장 잘 깨친 국가가 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스물네번 째 회원국이 됨으로써 지원을 받던 나라에서 지원하는 나라가 되었다. UNDP 서울사무소도 지난해 말로 문을 닫았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점심값을 다 치렀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공짜 점심'의 후유증은 있다. 가난하던 시절 한국에 헐값으로 들어온 미국농산물은 콩 밀가루 옥수수 등에서 외국농산물에 의존하게 만들었으며 미국으로부터 국가 안보를 지원받는 대가로 우리나라는 미국의 무기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주는 국가가 되었다. 그러니 "공짜 점심은 없다"는 여전히 우리나라가 새겨야 할 절대지혜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지난해 북한을 도와준다면서 엉뚱한 점심을 제안했다. 국내산 쌀 40만톤을 지원하던 관례를 폐기하고 옥수수 1만톤을 제안했다. 옥수수는 쌀보다 영양가도 낮다. 한국에서 자급되지도 않는다. 반면 쌀은 과잉생산 때문에 가격 폭락이 걱정이다. 쌀을 북한에 보내면 쌀값이 안정되어서 국내 농가가 살고 북한 사람들에게도 더 영양가 있는 곡물이니 좋다. 쌀 과잉생산이 문제된다지만 북한을 먹여 살려야 할 때를 생각한다면 생산성을 더 높이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북한을 돕고 남한도 사는 공짜 점심이 쌀 지원인데 옥수수는 누구를 위한 공짜 점심인가.

"공짜 점심은 없다"는 나라 안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판단하는 기준도 된다. 세종시 계획을 중립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민간위원회 위원들은 외국 현장을 다녀왔다. 좋게 보면 현장답사이고 달리 보면 정부 돈으로 한 외국여행이다.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한 12일자의 거의 모든 신문에는 세종시정부지원협의회의 전면광고가 실렸다. 이건희 삼성 전 회장이 사면된 것과 삼성이 세종시로 들어가게 된 것은 아무 관련이 없을까.

후유증 남기는 개발 방식

솔로몬 왕이 가장 지혜로운 왕이라고 하지만 이전 세대가 쌓아놓은 풍요를 그가 누렸을 뿐이다. 그의 과도한 성전 건축으로 그 다음 대에서 이스라엘은 어려워졌고 나라는 두 개로 갈라졌다. 솔로몬왕은 혹시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로 주변의 비판에 대응한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4대강도 세종시도 공짜 점심은 없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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