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연말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비빔밥은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음식'이라는 요지의 칼럼으로 촉발된 비빔밥 논쟁이 최근 구로다 지국장이 사과하는 내용의 칼럼을 후속으로 게재하는 선에서 일단락되는 듯 합니다.
그러고 보니 비빔밥이라는 음식이 이처럼 전 국민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것은 유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정말 우리가 비빔밥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라구요.
그러다가 문득 수년전 경북 영주시 선비촌의 한 문화유산해설사로부터 비빔밥의 미학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비빔밥의 매력, 그 당시 무릎을 탁 치며 귀 기울였던 비빔밥에 담겨 있는 사연은 이렇습니다.
비빔밥은 다섯 가지 색깔, 즉 오방색을 기본으로 한 음식입니다. 오방은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 등 다섯 가지 방위를 의미하며, 이는 음양오행의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이중 중앙은 노랑, 동은 파랑, 서는 하양, 남은 빨강, 북은 검정을 뜻합니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를 보면 밥, 고추장, 나물, 미나리, 고사리, 콩나물, 육회, 계란 등으로, 모든 재료의 색깔이 오방색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부터 가장 중요하다고 인식했던 '의식주'의 여러 곳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전통 베갯모는 남성용은 네모, 여성용은 둥그렇게 만들어졌고, 여기에 쓰이는 무늬는 오방색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명절에 어린아이들이 즐겨 입는 색동저고리도 오방색이 주 무늬로 쓰이는데, 이를 통해 나쁜 기운을 없애고 무병장수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잔칫상의 국수에 올라가는 고명 역시 오방색이 사용되구요.
이렇게 보기 좋게 만든 비빔밥을 한번에 비벼먹는 것은 왜일까요. 입에 들어갈 때까지 가지런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굳이 양두구육이라는 말을 들을 필요가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음양오행이 적절하게 조화를 내야 만사가 평탄하듯, 비빔밥을 얼마나 잘 섞느냐 하는 문제는 최상의 맛을 얻어낼 수 있는 지 여부와 직결됩니다. 오방이 서로 조화롭지 못하면 안되듯, 한 재료라도 제대로 비벼지지 않으면 제 맛을 내지 못하는 것이 바로 비빔밥입니다. 비빔밥은 역시 우리가 목청 높여 옹호할 만한 자랑스런 음식임에 틀림없습니다.
한창만 산업부차장 cmha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