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것 자체가 희망이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다 희망이라고/ 내게 다시 말해주는/ 나의 작은 희망인 당신/ 고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숨을 쉽니다 ('희망은 깨어 있네'에서)
사랑과 위로의 시인, 이해인(65) 수녀가 열 번째 시집 <희망은 깨어 있네> (마음산책 발행)를 냈다. 지난해 7월 암 수술을 받은 후 투병 생활을 하면서 쓴 101편의 시와 짧은 일기를 묶었다. 2007년 별세한 어머니를 그리는 시집 <엄마> (2008) 이후 1년반 만에 나온 시집이다. 엄마> 희망은>
책머리에서 자신을 '고통의 학교에서 새롭게 수련을 받고 나온 학생'이라 표현한 그의 시와일기는 고통도 삶의 일부로 끌어안는 넉넉한 정신을 보여준다. 김수환 추기경, 화가 김점선, 장영희 교수 등 최근 세상을 떠난 지인들을 애도하는 글도 눈에 띈다. 부산 성베네딕도수녀회에서 수행하던 중 2주가량의 치료 일정으로 상경한 이해인 수녀를 11일 인터뷰했다.
_ 근황이 궁금합니다.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는 마쳤고, 지금은 정기적으로 병원에 들러 검사를 받고 약을 받아갑니다. 몸 상태는 괜찮습니다. 치료를 마쳤으니 조심해야죠."
_ 지난해엔 병원에서 신년을 맞으셨을 텐데, 이번 새해는 어떠셨나요.
"부산 수녀원에서 조용히 맞았습니다. 겸손하고 성실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신년 기도를 올렸습니다. 아프고 보니 당연하게 여기던 것에도 새삼 감탄하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면서 좀더 열린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_ 투병 중 나온 시집이라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예전보다 죽음에 가까이 있고 건강 상태도 예측 불가한 상황이라 이번 시집엔 이별, 죽음에 대한 묵상이 많이 반영됐습니다. 그럼에도 슬프고 우울한 모습보다는 건강하게 투병하겠다는 의지와 희망이 담겨 있어 스스로 놀라고 있습니다. 수도자로서 의연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겠지만, 오래 수도를 하며 나도 모르게 쌓인 내공이 있는 모양이에요."(웃음)
_ 책을 보니 수술 후 한동안 시를 안 쓰셨다고요.
"아무래도 시를 쓰면 자연스레 열성을 다하게 되니까 자제했던 건데, 그래도 시가 계속 나오더군요. 원래 시상이 떠오르면 종이에 적은 뒤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고치다가 됐다 싶으면 컴퓨터로 옮기거든요. 이번에도 김치 익히듯 시를 좀더 다듬을까 하다가, 지금 책을 내는 편이 아픈 이들에게 더 많은 위로가 되겠다 싶어 용기를 냈습니다."
_ 수녀님에게 지난해는 유난히 이별이 많은 해였습니다.
"수술 받고 반년 동안 수시로 입원했는데 같은 층 병실에 김수환 추기경님이 계셨습니다. 서로 오가며 죽도 같이 먹고 농담도 나눴어요. 늘 남을 먼저 배려하는 분이셨죠. '이해인 수녀가 세상에 좀더 남아 좋은 시를 많이 쓰게 해달라'는 기도도 해주셨습니다. 선종 한 달 전(2009년 1월) 먼저 퇴원하며 찾아뵈려다 말았는데 그게 마지막이 되고 말았습니다."
_ 화가 김점선, 장영희 교수를 추모하는 시를 책에 실으셨습니다.
"서울에서 셋이 보기로 약속했다가 내가 수술 받는 바람에 못 만났는데, 이제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습니다. 장영희의 밝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 김점선의 독특한 웃음과 옷차림이 그리울 따름입니다. 지난번 꿈엔 고 피천득 선생님이 보였는데 내가 병난 걸 알면 걱정하실까봐 가까이 못갔습니다."
_ 어머니 유품 '행복수첩'을 소재로 한 시가 있던데요.
"어머니가 일기나 낙서처럼 쓴 글이 담긴 노트입니다. 그 중 '앞을 봐도 기쁘고 옆을 봐도 즐겁고 뒤를 봐도 마냥 행복하다'는 구절을 늘 마음에 새깁니다. 어머니의 행복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사방 어디를 봐도 찾을 수 있는 구체적인 것이었죠. 어머니처럼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저도 아프니까 이젠 아픈 사람들과 같은 대열에 서서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해주고 싶습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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