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잘못됐을까. 세계 최대의 정보망과 자금, 인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해 온 미 정보당국이 최근 잇따른 '정보 참사'로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9ㆍ11 테러 이후 미 정보조직은 엄청나게 방대해졌다. 그러나 알 카에다 등 국제 테러조직의 변화된 전략에 대응하는 정보 수집ㆍ분석 등의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과거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게 미 언론들의 지적이다. 지난해 11월 텍사스주 포트 후드 육군기지 총기난사, 지난달 말 발생한 항공기 테러기도 사건과 아프가니스탄 중앙정보국(CIA) 기지 자살폭탄 공격은 모두 사전 예측 가능했다는 점에서 비대한 조직의 관료주의적 한계를 드러낸 사건들로 지목된다.
미 정보당국을 당혹케 하는 것은 우선 테러 정보의 방대함이다. 알 카에다의 달라진 전략 중 하나는 엄청난 정보를 흘림으로써 정보의 진위를 분석하는데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다.
전직 CIA 요원은 "정보시스템 전체가 과도한 정보로 병목현상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의심스러운 인물과 정황 등에 대한 정보가 난무하다 보니 제대로 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가 뒤섞이고, 이 과정에서 핵심정보가 누락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때문에 엄청난 정보를 걸러내는 일만으로도 정보기관들이 허덕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CIA 출신 전문가 브루스 리델은 "정작 필요한 정보는 조금밖에 갖지 못한 채 매 순간 조각그림을 맞춰야 하는 것이 정보기관의 현실"이라고 전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파키스탄 등에 집중하는 사이 테러세력이 전방위적으로 근거지를 확산하는 것도 미 정보능력의 부실을 낳는 원인이다. 전문가들은 "'점조직'으로 산재해 있는 전세계 테러리스트들이 보다 신속해지고 있다"며 "미국의 대응 자원이 분산되고 더 부실해 질 수 밖에 없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크리스마스 항공기 테러기도 사건이 불과 2개월전부터 추진되고, CIA 기지 자살폭탄 공격도 몇달만에 성사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테러 공격이 수년에 걸쳐 장기간 기획된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인터넷으로 테러요원을 모집하는 등 테러자원의 수급이 첨단화하는 것도 테러조직의 국지적 확산을 가능케 하는 요인이다.
대 테러 전문가인 브루스 호프만 조지타운대 교수는 10일자 워싱턴포스트에"알 카에다가 9ㆍ11 테러 때는 상대를 한방에 쓰러뜨리는 '녹 아웃' 전법을 썼지만, 지금은 살을 도려내 상대를 천천히 죽이는 '능지처참(death by a thousand cuts)' 전략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호프만 교수는 알 카에다의 이런 전략이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방대한 양의 테러 정보가 미 당국을 현혹하고 테러요원의 수혈이 국지적으로 가능해진 때문이라며, 알 카에다의 성장동력인 '급진적 의식화'의 차단이 미 정보당국의 가장 큰 과제라고 지적했다.
테러 정보의 '현장성 결여'도 지적된다. 아프간 주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 정보책임자인 마이클 플린 미군 소장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미 정보기관들이 무장세력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작전지역 주민들에 대한 기본적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보분석가들이 "마치 점을 치는 것 같다"고 하소연하는 것은 '생생한 현장 정보'에 굶주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부 장교들은 "정보기관의 정보보다 신문에서 더 유용한 정보를 얻는다"고 푸념하기도 한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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