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안정옥의 두 번째 시집 <나는 독을 가졌네> 에는 이름도 정겨운 토종 물고기들이 살아 펄떡인다. 강준치 버들치 문절망둑 강주걱양태 동자개…. 시인은 낚시를 다니며 내와 강, 산골짜기에서 한 줄 실의 인연으로 만났던 물고기들을 아름다운 시어로 불러냈다. 자신의 사랑을 '황복어'처럼 '독을 가졌다'고 읊기도 하고, '산천어'에 빗대 떠나간 사랑을 노래하기도 했다. '봄이 되면 바다로 향하는 신경통을 앓아가며/산천어는 또 다른 산천어를 만들고 한 때는 송어였던 기억을 잊었다(중략)/사랑을 품고는 오지 않는 물고기가 있었다 오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시인의 노래대로 산천어와 송어는 형제이자 연인이다. 주 서식지만 다를 뿐 같은 종이다. 산천어는 계곡, 송어는 바다에 산다. 산천어는 회귀어인 송어가 민물에 적응해 살면서 생겨났다. 알에서 깨어난 뒤 바다로 갔다가 계곡으로 돌아오는 송어의 70~80%는 암컷, 계곡에 눌러 앉게 된 산천어의 대부분은 수컷이다. 이들은 매년 10월 계곡에서 재회한다. 송어는 치어 시절보다 크기가 3배 이상 커져 길이가 60㎝나 되고, 산천어는 치어 시절 그대로 20㎝에 불과한데도 둘은 사랑을 나눈다. 둘의 변신과 사랑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풀리지 않고 있는 의문이다.
▦산천어는 남대천 연곡천 명파천처럼 동해로 흘러드는 하천 계곡에서만 살았다. 산천어와송어의 태생적 관계를 생각하면 산천어가 영동 지역에만 분포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산천어는 여름에도 수온 20도 이하의 차갑고 맑은 물에만 살아 깨끗한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조금 난폭한 물고기다. 동물성 플랑크톤, 갑각류, 곤충, 작은 물고기 등을 잡아 먹는 육식성이다. 계곡 생태계가 형성한 먹이 사슬의 꼭대기에 있다. 산천어가 없던 하천과 계곡에 산천어 개체수가 급증하면 하천ㆍ계곡 생태계의 질서가 교란되고 균형이 깨지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강원 화천군의 산천어 축제가 지난 주말 시작됐다. 화천천의 두께 40㎝ 얼음에 1만여 개의 낚시용 구멍이 뚫리고 20여만 마리의 양식 산천어가 투입됐다. 아쉽게도 국내 양식 산천어의 조상은 일본에서 수입한 발안란이다. 산천어의 청정 이미지와 양식 기술 덕분에 전국 곳곳의 하천과 계곡에도 산천어가 방류됐다. 지역의 수입이 막대한 축제를 시비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태백산맥 동쪽의 산천어가 환경 파괴로 서식지가 줄어들고, 서쪽은 무늬만 토종인 산천어가 하천ㆍ계곡 고유의 생태적 특성을 훼손한다는 우려와 경고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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