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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쏟아지면 눈이 번뜩 '제설의 달인'/ 서울동부도로사업소 이승영씨 '제설차 강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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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쏟아지면 눈이 번뜩 '제설의 달인'/ 서울동부도로사업소 이승영씨 '제설차 강행군'

입력
2010.01.11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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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되도 할 수 없죠. 시민들이 눈 때문에 불편해선 안되잖아요."

8일 새벽 지하철 2호선 성내역 2번 출구 앞. 비상등을 켠 1톤 트럭 앞에 경광등에 안전모를 쓴 사내들이 바깥차선의 차량 진입을 막고 있다. 그 앞에는 삽날 트랙터가 시커먼 돌덩이처럼 굳은 눈 더미를 부수고, 삽날을 앞에 붙인 다목적 트럭 한대가 따라와 눈을 끌어 담는다. 트럭 운전자가 문제가 있는 지 직접 삽을 들고 내린다. "기계가 못 들어가는 곳은 사람이 치워줘야죠."

운전자는 서울동부도로사업소의 이승영(53) 건설장비조정원. 살을 애는 듯한 바람 때문에 체감온도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간 새벽 강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막바지 제설작업에 여념이 없다.

이씨의 임무는 성내역부터 인근 신천동길까지 10여㎞ 구간의 길가에 모아진 눈을 탄천 유수지로 치우는 일. 구청이 낮에 처리했어야 했지만 인력부족으로 작업을 마치지 못한 구간이다.

이씨는 10년째 '도로의 숨은 파수꾼'역할을 하고 있다. 기능직 공무원인 이씨는 2000년 서울성동도로교통사업소에 배정받은 이후 지금까지 다목적 차량을 이용한 도로 보수를 담당해왔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여름에는 폭우를, 겨울에는 눈을 치우는 일이 주 업무가 돼 버렸다. 이젠 내리는 눈만 봐도 며칠짜리 작업인지 알 정도로 베테랑이 됐다.

그런 이씨에게도 4일 내린 기록적인 폭설은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제설 지시를 받고 오전 4시께 급히 잠실대교에 갔지만 하늘이 뚫어진 듯 퍼부은 눈 폭탄에 속수무책이었다.

다리 위는 주차장이 돼가고 있었고, 시민들은 하나 둘씩 길에 차를 버리고 갔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눈이 내리는 것은 난생 처음 봤어요. 제설차량이 고립될 정도였으니까요."

이씨는 정신을 다 잡았다. 교량은 지열이 없어 노면이 쉽게 어는데다,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긴장감이 더했다. 이씨는 노면에 쌓인 눈 제거가 최우선이라고 판단하고 팀원들과 차량을 막아가며 제설작업을 벌어 오후 들어 잠실대교를 비롯해 올림픽ㆍ한강ㆍ천호대교의 차량 통행을 재개 시켰다.

그렇지만 이건 제설작업의 시작일 뿐이었다. 어마어마한 눈 말고도 동장군이라는 장애물이 버티고 있었던 것. 대개 폭설 뒤에는 날씨가 풀려 눈이 녹았던 예년과 달리 이번에는 기록적인 한파(영하 14도)까지 몰아친 것이다.

도로엔 온통 하얀 서리가 꼈고, 매서운 바람까지 더해 눈은 얼음 덩어리로 변했다. 눈이 얼음으로 변하면서 작업은 두 배 이상 힘들어졌다. 워낙 눈의 양이 많아 치워 버릴 곳도 마땅치 않았다.

이씨는 이 날부터 동료들과 함께 '24시간 눈치우기 전쟁'에 돌입했다. 3일 오후 집을 나온 뒤 8일까지 6일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눈과의 처절한 싸움을 했다.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 잠은 사무실 의자를 모아 3,4시간 쪽잠을 잤다.

"작업을 하다 보면 힘든 것은 일이 아닙니다. 도로가 쉽게 얼어붙기 때문에 작업을 최대한 빨리 마쳐 시민들이 불편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씨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일이 아니었다. 6일 밤낮을 쉬지 않고 시민을 위해 일을 했는데도 간혹 불평과 욕을 들을 때면 힘이 빠진다고 했다.

"한번은 눈을 치우고 있는데 한 택시기사가 '서울시가 눈을 제때 못 치워 하루 일을 망쳤다'며 호통을 치고 가더군요. 처음에는 이런 분들이 야속하기도 했죠. 하지만 오죽 불편하면 그러겠어요. 충분히 그 마음을 이해합니다. 다만 이번 같은 기습 폭설은 인력으로 막기가 힘들다는 점은 이해해 줬으면 합니다."

제설작업은 이미 이씨에게는 겨울이면 으레 들이닥치는 일상이 돼 버렸다. 지난달만 해도 매주 쉬는 주말에 눈 예보가 있어 비상대기를 했다. 그래서 스키가 이 씨의 유일한 취미지만 잊은 지 오래다. 이 씨는 "무엇이든 초기 대응이 중요해요. 시민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항시 대기하고 있어야죠"라고 말하며 막바지 제설작업을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

박관규 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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