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화위지(橘化爲枳ㆍ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중국 제(齊)나라 제상 안영(晏嬰)의 고사다. 물과 땅이 다르면 과일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사람도 문화도 마찬가지다. 정서와 취향, 역사와 가치관과 풍습이 다르면 문화의 가치도 달라진다. 많은 뮤지컬들이 뉴욕 브로드웨이의 인기를 업고 자신만만하게 태평양을 건너오지만 실패하고, 영화에 아카데미 특수가 사라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도 귤이 되려면 현지 기후와 토양, 입맛에 맞게 개량되어야 한다. 품종만 좋다고 어디에서나 같은 맛의 열매가 열리지는 않는다.
▦문화에도 할인이 있다. 영국의 학자 호스킨스와 마이러스에 의하면 "하나의 문화상품이 다른 나라나 지역에서 소비될 때 일정한 할인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문화적 할인(cultural discount)은 후진 문화일수록, 언어와 습관과 역사가 다를수록 그 폭이 크다. 한국 사람들이 <아바타> 는 입장료를 더 내고서라도 보지만, 필리핀이나 베트남 영화는 싸게 해도 안 보려는 것과 같다. 반대로 한국영화가 좀처럼 미국시장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 유교문화권으로 부를 수 있는 동남아 국가에 유난히 한류 바람이 센 것도 같은 이유이다. 아바타>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 가 대단하다. 지난해 11월14일 막을 올린 이후, 지금까지 800석의 공연장(서울 강남 코엑스아티움)에 빈 자리가 없을 정도다. 예상 밖이다. 이 작품은 탱자가 될 조건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었다. 2001년에 나온 할리우드 영화를 4년 전 브로드웨이가 뮤지컬로 만들어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제목이 상징하듯 인물, 스토리, 정서, 대사와 무대가 너무나 미국적이다. 그렇다고 후광이나 향수를 등에 업을 만큼 9년 전의 영화가 국내에서 엄청나게 성공한 것도 아니다. 선진 문화상품이지만 할인이 클 수밖에 없었다. 금발이>
▦<금발이 너무해> 는 그 벽을'우리식 정서'로 뚫었다. 대본과 음악의 큰 줄기만 빼고 모두 바꾸었다. 구성은 집약적으로, 무대는 활기차고 빠르게, 소품은 단순하게, 노래는 짧고 쉽게, 대사와 가사는 우리 유머를 섞어 재치 있게, 연기는 자연스럽게, 춤은 젊은 감각으로. 여기에 스타 캐스팅(제시카, 김지우, 이하늬)을 결합했다. 적절한 단어 하나 찾기 위해 밤새 사전을 뒤졌다. 결과 <금발이 너무해> 는 뮤지컬이라면 고개를 흔드는 사람들까지도 "재미있네"한다. 이렇게 문화적 할인도 얼마든지 문화적 접근성 작업으로 없앨 수 있다. 하기에 달렸다. 금발이> 금발이>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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