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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충청 사람' 사고실험

입력
2010.01.11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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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사람이 아니길 다행이다. 정부가 내놓을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싼 국가적 논란을 지켜보며 떠오른 생각이다. 가는 이해의 끈이라도 닿아 있었다면 '만약 내가 세종시 인근 지역 사람이라면' 하는 사고실험을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 세력과 뚜렷한 친소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정치적 입맛에 따라 사고실험이 뒤틀릴 일도 없다.

마음 놓고 조치원이나 공주쯤이 조상 대대로 살아왔고, 언젠가는 돌아갈 고향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정부가 두 달 동안 애써 마련한 '수정안'은 매력적이다. 대기업과 탄탄한 중소기업, 미래의 첨단기술을 이끌 연구소가 줄지어 들어서고, 전국에서 학생들이 몰릴 대학과 자율형 사립고가 세워진다니 장차 인구 40만 명 규모의 번듯한 도시가 될 게 틀림없다. 고향 사람인 정운찬 총리가 하는 약속이어서 미더움이 더하다.

실리와 체면 다 중요해

2030년 완성 계획을 10년이나 앞당기는 것도 마음에 든다. 세종시의 후광을 업고 고향 땅이 날이 다르게 발전하고, 그 과실(果實)을 당대에 곧바로 누릴 수 있다. 돈으로는 값을 따질 수 없는 고향의 자연환경이 파괴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불필요하다. 녹색도시로 개발되는 세종시의 환경친화 정신이 주변에까지 따스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선뜻 됐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애초에 우리는 가만히 있었는데 정치하는 사람들끼리 행정수도를 만들겠다고 이러쿵저러쿵 하더니, 나중에는 행정부처 일부에 '자족기능'을 덧붙인 복합도시로 만들겠다고 했다. '자족기능'을 갖추는 구체적 방안은 애매했지만, 대체로 기업과 연구소, 교육기관 등을 뜻한다는 건 누구나 알 만했다. 정부가 행정부처 이전용 부지까지 사들인 것으로 보아 헛말이 아닌 성 싶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행정부처는 싹 빼는 대신 경제 파급이나 고용 유발, 인구 유입 효과가 행정부처 이전보다 훨씬 나은 산업ㆍ연구 시설 등을 더 많이 넣어주겠다니 어리둥절해진다.

충청도 양반 체면에 쉽게 실리를 좇을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다. 신의를 무겁게 여기는 마음 한 구석으로 은근한 의문이 고개를 든다. 우선 무엇보다 더 많이 넣어준다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자족기능'말만 있었지 그 구체적 내용이 정해진 바 없었다. 또 행정부처 일부 이전에 덧붙여 그렇게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샘솟는다. 보완적 관계였던 행정부처 이전과 '자족기능'이 뒤늦게 상호 배척 관계로 바뀐 것으로 보아 '수정안'은 처음부터 행정부처 이전 백지화를 위한 우회적 수단임이 확실해졌다.

어차피 행정수도 역할을 하지 못할 바에 행정부처 일부 이전에 굳이 집착할 이유는 없다. 다만 행정부처 이전의 파급효과는 정부의 말보다 훨씬 클 수 있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경험이 행정부처 포기를 가로막는다. 국가적 관심과 투자가 집중된 대덕 연구단지에 공공 연구기관과 기업체 연구소가 들어섰지만 대덕 주변에 미친 파급효과는 미미했다. 과학엑스포를 유치한 이후에도 별 변화가 없던 곳이 정부 대전 청사에 철도청 등이 입주한 이후 급격하게 바뀌어 오래지 않아 '대전의 강남'이 되었다.

행정기관의 힘은 크다

행정부처 이전의 현실적 효과를 산술적으로 계산하기는 어렵지만 중앙부처의 힘이 여전히 대단하다는 것은 한국적 상식이다. '수정안'의 입법 전망이 처음부터 밝지 않았고, 사회적 논란으로 정부가 정치적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데도 공무원들이 일제히 '수정안'에 매달렸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 전부가 아니라면 그것만으로도 행정기관의 힘은 미루어 짐작이 간다. 물론 흔히 말하는 9부2처2청이 다 와야 하는 건 아니다. 최소한 세종시의 도시기능과 관련성이 큰 행정부처 몇몇이라도 와야 명분을 추슬러 실리를 챙길 수 있을 듯하다.

이런 상상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니 새로운 의문이 솟는다. 법이 정한'행복도시'도 아닌데, 새 도시 하나를 꼭 세워야 하나?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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