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기능 선진국을 가다→ 스위스(下) 학교와 기업이 함께 이룬 완전고용의 꿈中企가 전체 기업의 99.7%… 숙련기술 축적해직업학교서 기업은 기술 전수, 정부는 학비 제공학생들은 인문계 고교보다 직업학교 진학을 선호
"학교와 기업은 한 몸이 돼야 하고, 교육과 경제는 같은 길을 가야 한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스위스 선수단 공식 대표이자 스위스 중소기업협회 부국장인 크리스틴 다바츠씨는 "숙련된 기술 인력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경제계란 점에서 기능인 육성의 책임은 기업에게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기능인 육성은 원래 정부에만 떠 넘길 게 아니라 기업이 적극 나서야 할 부문이라는 것. 또 교육과 경제를 따로 구분할 필요도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다바츠 대표는 이러한 이유로 먼저 스위스 경제의 특수성을 들었다. 스위스 경제는 종업원 250명 이하의 중소기업이 전체 스위스 기업의 99.7%를 차지하고 있다. 종업원 수가 9명 이하인 기업도 87.6%에 달한다. 이에 따라 스위스는 전체 근로자의 3분의2가 종업원 250인 이하의 중소기업에서 근무한다. 특히 스위스의 중소기업 대부분은 자신만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숙련된 기술을 축적하고 있다. 각 기업의 서로 다른 특수 분야 기능인을 정부 차원에서 육성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기본적인 이론 교육 등은 정부 차원에서 실시하더라도 세부적인 실습과 숙련은 기업에서 책임지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직업훈련학교 학생들이 5일중 4일은 회사로 직접 가 현장 실습을 하고, 하루만 학교로 가는 시스템이 정착된 이유다.
스위스 연방 정부 전문교육기술부 베레나 베버 국제협력국장도 "스위스의 기능인 교육은 이러한 공감대 속에서 정부와 기업, 학생의 3위 일체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밝혔다. 직업훈련학교의 학비와 급식비는 정부에서 제공한다. 학생들은 또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으면서 기술을 배운다. 기업들로서는 어차피 미래에 자신의 회사를 위해서 일할 인력들을 교육하는 것인 만큼 실습생이라고 하더라도 일정액을 지급한다.
"한국에선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가 기능인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고 하자 베버 국장은 "스위스에서는 인문계 고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20%에도 못 미칠 뿐 아니라 대학 도중 포기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아 제대로 졸업하는 이는 10%도 안 된다"며 "스위스 부모들은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어 인문계 고교를 고집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대학 진학자 중 우수 학생들은 주로 공대로 가는 이공계 중심의 교육 문화를 가진 것도 이런 분위기에 한 몫 하고 있다.
그는 또 "기업에서 학교에 찾아가 최근 어떤 분야의 인력이 부족한 지와 최근 경제 동향 등을 직접 설명하고 있는 만큼 인문계 고교보단 졸업 후 일자리가 많은 직업훈련학교의 인기가 더 높다"며 "설사 직업훈련학교로 진학했다 해도 자신이 원하면 얼마든지 다시 인문대학이나 공과대학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고 덧붙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교사가 학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후 자신이 원하면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만큼 한 번의 선택이 일생을 좌우하진 않는다는 얘기이다.
이처럼 인재의 최종 수요자인 기업이 교육 시스템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철저히 기업의 수요에 입각한 교육이 이뤄지면서 스위스는 사실상 완전 고용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 실제로 1990년대까지 스위스의 실업률은 1%도 안 됐다. 2009년 실업률은 2.8%가 될 것으로 추정되나,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나갈 때마다 우리나라 선수단을 눈 여겨 봤다는 다바츠 대표는 "한국 선수들은 마치 올림픽대회에 상을 타기 위해서만 기술을 익히고 준비하는 것 같다"며 "대회에서 수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생 함께 할 자신의 직업과 연계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력(學力)이 아닌 학력(學歷)에만 몰두하고 있는 우리 교육 제도에도 똑 같이 적용될 수 있는 말이었다.
부존자원 없는 산골小國
꼼꼼한 기술력 바탕
경제强國으로 우뚝
스위스는 시계 기계 의약 식품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 강국이다. 지난해 캘거리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선 우리나라가 스위스를 제치고 종합 우승을 했지만, 2005년에는 스위스가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기능 선진국이기도 하다.
이처럼 스위스가 기술 부문에서 강한 것은 스위스 역사를 돌아봐야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스위스는 국토가 좁고 지하 자원이 부족, 식량 자급도 어려운 나라다. 18세기까진 일자리도 마땅한 게 없었다. 이 때문에 스위스인들은 생존을 위해서 외국의 용병으로 나서야만 했다. 성실하고 신체 건장하며 믿음직스러운 스위스 병사는 각 국에서 인기가 높았다. 이로 인해 각 국은 堧岾岵막?스위스 용병을 스카우트했고, 이런 나라들이 서로 전쟁을 할 때면 스위스 용병은 같은 민족에게 총부리를 겨눠야만 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용병으로 근무할 당시 해외의 물정에 눈을 뜬 스위스인들이 이후 무역상이 되며 스위스 경제가 태동한다. 이들은 겨울 농한기에 할 일이 없었던 스위스 시골 마을마다 물레와 직기를 만들었고, 이렇게 생산된 직물을 수출했다. 특히 1806년 나폴레옹이 영국에 대한 대륙 봉쇄령을 내리면서 스위스 경제가 전환기를 맞게 된다. 값이 싼 영국산 면사가 사라지면서 유럽 대륙에서 스위스 면사가 큰 인기를 얻은 것이다. 방적기계들을 영국으로부터 수입할 수 없게 되자 스위스는 이를 자체 개발할 수 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기계 공업이 발전했고, 선박용 엔진까지 개발하게 된다. 또 직물을 염색하는 과정에서 화학산업도 일어난다. 화학은 다시 의약 및 식품 산업 발전으로 이어졌다. 스위스가 초콜릿으로 유명한 것도 처음에는 초콜릿이 고가의 의약품으로 팔린 데서 유래한다.
자유주의 사상도 경제 발전의 밑바탕이 됐다. 스위스가 종교개혁의 본거지로 부상하자 프랑스의 신교도와 시계 제작 명인들이 대거 스위스로 망명한 것이 좋은 예다. 일각에선 스위스의 긴 겨울과 산악 지대가 전문 기능직을 양성한 환경이라고 분석한다. 산중 한촌에선 하찮은 물건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경제 발전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스위스인들만의 지혜와 근면이 밑바탕이 됐다. 김윤태 KOTRA 취리히 코리아비즈니스센터장은 "스위스인들은 아침 6시만 되면 대부분이 일을 시작할 정도로 부지런한 국민"이라며 "강대국에 둘러 쌓여 있고, 부존 자원이라고는 하나 없는데도 불구하고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조업뿐 아니라 금융업과 관광업에서도 세계적 강국을 이뤘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많은 우리가 아직 배울 게 많은 나라"라고 말했다.
취리히=박일근기자
[인터뷰] ●핼그운트코社의 다미안 밴치게르
"회사 다니면서도 다른 직업학교서 훈련"
"돈만 생각하면 의사나 변호사가 더 낫겠지만 에너지와 환경에 대한 관심이 크고 자유로운 일을 하고 싶어 배관 설계 부문을 선택하게 됐다."
스위스 동부 생갈렌 지역의 건물 냉ㆍ난방 및 환ㆍ배기 시스템 회사인 핼그운트코에 근무하고 있는 다미안 밴치게르(22)씨는 처음엔 냉ㆍ난방 시설 등을 직접 시공하는 배관공이 되기 위해 직업훈련학교를 갔다. 졸업 후 핼그운트코에 입사를 했지만 그는 지금 또 다른 직업훈련학교를 다니고 있다. 설계 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하루 12시간을 회사에서 지낸다. 8시간은 회사 직원으로 배관공 일을 하고, 4시간은 설계 실습생으로서 일을 배우는 것.
스위스에서는 밴치게르씨처럼 한 분야의 직업훈련학교를 마쳤다고 하더라고 다시 다른 직업훈련학교를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밴치게르씨는 두번째 직업훈련학교에서 배관 설계에 대한 공부를 마치면 기술대학까지 진학, 환경 테크놀로지를 더 공부할 생각이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다가가고 있는 셈이다. 어느 분야에 있건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새로운 것을 공부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의 덕분이다.
밴치게르씨는 "정부 건설부 공무원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 모두 내 선택을 적극 지지했고, 이곳 핼그운트코에서 실습까지 하게 되자 자랑스러워 하셨다"며 "언젠가는 사장이 돼 이런 핼그운트코 같은 내 회사를 차리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캘거리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배관 분야로 출전, 4위에 입상한 그는 한국 선수들에 대해선 "남들이 어떻게 하는 지 관심이 많고, 이기려고 하는 의지도 강한 것 같았다"며 "다른 나라 선수들에게선 볼 수 없던 한국만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생갈렌=박일근기자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