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참석했다. 정부 관료가 금통위 회의에 모습을 보인 것은 1999년 6월 3일 이후 11년 만이다. 재정부는 앞으로도 회의에 정례적으로 참석해 경기와 물가상황 등에 관한 정부의 인식과 정책 방향을 적극 설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정부와 중앙은행 간 정책 공조 및 정보공유 확대의 필요성이 제기됐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은행법 제91조는 '재정부 차관 또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금통위 회의에 열석(列席)해 발언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따라서 법적으로 보장된 재정부 차관의 금통위 참석을 막을 명분은 없다. 통화정책은 정부의 재정 및 금융정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정책당국 간 적극적 소통을 통해 이견을 해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인정된다.
하지만 재정부의 열석 발언권은 사실상 사문화한 규정이다. 1998년 양자 간 정례 협의수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한은의 독립성이 강조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미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도 열석 발언권은 없다. 정책 공조를 위해 필요하다지만 매달 대통령이 주재하는 비상경제대책회의에 한은 총재가 참석하고 있고, 금융정책협의회등 공식ㆍ비공식 공조 채널도 많다.
더욱이 지금은 금리 인상을 둘러싸고 정부와 한은이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미묘한 시점이다. 정부는 경기부양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늦춰야 한다"는 입장을 노골적으로 피력해 온 반면, 한은은 조만간 적절한 수준의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때문에 시장에선 재정부 차관의 금통위 참석을 상반기 중 금리 인상을 막고 한은을 직접 통제하려는 의도로 해석하고 있다.
통화가치의 안정은 경제 안정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금리 결정은 중앙은행의 독립적 의사결정으로 이뤄져야 한다. 정부 대표가 10년 넘게 금통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던 이유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한다는 차원이었다. 이번 사태가 경제위기로 위축된 한은의 독립성을 더 훼손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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