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범죄, 특별법제정 배상을" 여론
1980년 신군부의 언론사 통폐합이 명백한 불법 행위였다는 사실이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의해 또 한번 확인되면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차제에 언론사뿐 아니라 다른 국가 범죄 피해자들도 쉽게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신속하고도 유연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특별법 제정 여론이 제기되는 것은 현행 법의 틀 속에서는 사실상 국가의 배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등 언론통폐합 당시 피해를 입었던 언론사들은 민주화의 기운이 조금씩 싹트던 노태우 정권 말기부터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헌법소원을 잇따라 제기했으나 모두 패소했다. 불법행위인 것은 명백하지만 가해자를 알게 된 날로부터 3년 또는 불법이 있었던 날로부터 10년이라는 국가배상법 및 민법상 배상청구권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점, 통폐합에 동의했던 행위를 취소할 수 있는 취소권 소멸시효 3년이 지났다는 점 등이 이유였다.
강압에 의해 계열사인 서울경제신문을 폐간한 뒤 1988년 복간 때까지 8년 동안 발간하지 못했던 한국일보도 소송과 헌법소원을 냈으나 비슷한 이유로 패소했다. 물론, 지금이라도 정부가 "책임감을 느끼고 소멸시효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현행 법에서도 소송을 통한 배상이 이뤄질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극히 낮다. 배상을 위해서는 사실상 특별법 제정이 유일한 대안인 셈이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는 않은 일이다. 배상 과정에서 국민 세금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정부의 우선적인 부담이다. 2004년 거창 양민학살사건 피해자 배상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가 이런 이유 때문에 고건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전례도 있다. 형평성 측면에서의 비판, 피해액 산정 과정에서의 논란도 예상된다.
그러나,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이 필요하다는 데 대해서는 반대 여론을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가 국민을 해치는 행위를 한 것인데 그냥 넘어가는 것은 사회정의에 반하는 일"이라며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사안이라면 특별법을 제정해 국가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법조계 인사도 "언론통폐합은 명백하게 국가공무원 주도로 발생한 사건인 만큼 조속한 특별법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해진 한나라당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언론 통폐합 피해자들에 대해) 사과와 보상, 명예회복 가운데 지금이라도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있다면 정부는 최선을 다해서 바로 잡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 신군부, 장강재 회장 연행후 포기각서 강요
1980년 언론통폐합 과정에서 한국일보의 자매지로 당시 대표적 경제지였던 서울경제신문도 신군부의 불법적인 강압에 의해 폐간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위)가 당시 기록과 증언 등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1980년 초 집권에 장애가 되는 언론을 조정 통제하기 위해 언론통폐합안을 만들면서 당시 4개의 경제지를 2개로 재편하는 계획을 세웠다. 특히 경제지로선 선두를 달리고 있던 서울경제신문을 계열사인 한국일보와 통폐합해 폐간하도록 했는데, 신군부가 내세운 이유는 어이없게도"종합일간지가 경제지까지 갖고 있다. 다른 신문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울경제신문의 폐간 계획에 장강재 당시 한국일보 회장이 반발하자, 신군부는 1980년 11월 12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장 회장을 연행했다. 권총을 휴대하거나 칼을 차고 있던 보안사 요원들은 장 회장에게 언론사 포기각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요구하면서 "서울경제신문이 아까우면 한국일보를 폐간하라"고 위협하기도 했다고 진실위는 밝혔다. 장 회장은 강압에 못 이겨 '새 시대를 맞아 국가의 언론정책에 순응한다'는 내용의 포기각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서울경제신문은 10여일 뒤인 11월 25일 강제 폐간되는 날벼락을 맞았다.
특히 언론통폐합 당시 조금이나마 보상을 받았던 다른 언론사와 달리 한국일보는 서울경제신문을 강제 폐간당하고도 아무런 금전적 보상을 받지 못했다. 서울경제신문 폐간으로 인해 기자 70여명 등 직원 300명을 인수한 한국일보로서는 경영상 상당한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경제신문은 1988년 복간하긴 했지만,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 시효 등을 이유로 국가로부터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