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제당론·공천권이 구태 되풀이 '족쇄'로
'파행, 몸싸움, 날치기 ' 극한 대결과 투쟁의 정치가 일상화한 18대 국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사회적 갈등의 조정자여야 할 국회가 오히려 갈등의 진원지가 됐다"는 국회 무용론까지 거론되는 단계에 와 있다.
이런 현상은 의원 개개인의 자질 문제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의원 개인들의 입법 열기와 의원연구단체의 활동은 어느 때보다도 활발한 편이다.
그렇다면 국회 파행의 원인은 낡은 체제, 제도, 관행에서 찾아야 한다. 먼저 '정당에 의한 국회 지배'라는 낡은 관행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정당은 사실상의 강제적 당론과 공천권을 통해 개별 의원들을 통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의원 개개인이 국민의 대표자로서 스스로의 소신과 양심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여당 의원은 정부를 편들고, 야당 의원은 반대만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됐다. 물론 '169(한나라당) 대 87(민주당)'의 불균형한 의석 분포가 구(舊) 체제의 모순을 더 극명하게 드러나게 한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둘째, 국회 운영 제도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구 패러다임에서 정착된 현재의 국회 운영 제도로는 생산적으로 일하는 국회로 바뀌기 어렵다. 물론 교섭단체 대표간 합의에 의한 국회 운영은 효율성 측면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정치상황에 따라 들쭉날쭉한 여야의 판단에 모든 국회 운영을 맡기기보다 의사 일정의 상당 부분이 이미 정해진 국회 시스템에 따라 진행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 일정의 제도화를 통해 '예측가능한 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미 다양한 국회 개혁 방안이 나와 있다. 큰 틀에선 삼권분립에 입각해 국회가 입법부로서 본연의 역할을 하도록 행정부(대통령)와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정치학자들은 이를 위해 "정당의 강제적 당론 금지와 상향식의 민주적 공천제 실현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도개선의 측면에선 먼저 국회의장이 여야 원내대표 대신 국회 운영위원회와 협의해 주요 사항을 결정하도록 하고 국회법에 본회의 개의 요일 및 시간을 지정하는 '캘린더식 국회 운영'을 제도화함으로써 여야간 대립으로 인한 국회 파행을 최소화하자는 방안이 있다. 입법부 기능 강화를 위해 상시 국정감사제도를 도입하고 예결특위를 일반 상임위로 전환하자는 방안도 나왔다.
문제는 '여야 대치→국회의장 직권상정→야당 실력저지→국회 파행'이 반복되는 운영 패턴의 개선이다. 한나라당은 일정 기간이 지난 법안의 자동상정을 의무화하고 심사기한을 정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자는 입장이다.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제도를 허용할 수 있지만, 법률안 처리 기간을 넘을 수는 없도록 제한적으로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등 야당은 "수의 열세로 거대 여당의 독주를 감당하기 힘든데 그나마 가진 견제장치를 어떻게 내놓겠느냐"는 입장이다. 결국 관건은 정치권의 개혁 의지와 실천이라는 것이 정치학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국회가 파행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적 약점은 이미 드러났고 답도 나와 있다"며 "정파적ㆍ계파적 이해 관계를 초월해 한국정치를 정상화하겠다는 여야 정치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 '여야 의견 조정규칙' 마련해야 국회 파행 사라진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국회 폭력과 파행 방지를 위한 근본적 해결책으로 '민주주의 기본인 다수결과 소수의견 존중 원칙을 지키면서 합리적으로 여야 의견을 조정할 수 있는 규칙 마련'을 꼽고 있다. 연세대 김주환 교수는 "여야가 모두 룰을 지키면서 대화하고 타협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숙의(熟議) 민주주의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여야 모두가 상호호혜주의 원칙에 입각해 당파 이익보다는 의회주의 원칙을 먼저 생각하면서 국회를 운영하자는 내용의 정치적 선언을 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폭력 없는 국회와 상생의 정치 전통을 만들기 위한 '생산적 불문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여야의 유력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다음 선거에서 여야가 바뀌더라도'폭력 없는 국회'를 이끌어내자고 선언하면 된다"고 제의했다.
합법적 의사진행방해 제도인 '필리버스터'도 대안으로 나온다. 각종 쟁점법안이 다수당에 의해 일사천리로 부실하게 처리되지 못하도록 하고, 소수당의 주장도 국민에게 충분히 알려질 수 있도록 상임위원회와 본회의에서 충분한 토론 기회를 부여하자는 취지에서 거론되는 방안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소수당은 물리력 동원보다는 합법적 방식으로 반대 의사를 표출하고, 입법 지연을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무한정 허용되면 의사일정이 마비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의 토론종결 제도처럼 재적의원 5분의 3 등의 다수 동의가 있을 경우 토론을 종결하고 표결 처리해야 한다는 조건도 거론된다.
국회 질서유지권 강화도 해법으로 제시된다. 현행 국회법에 따르면 회의장에서 질서문란 행위를
하는 의원에 대해서는 발언금지 및 퇴장 정도의 조치만 가능하지만 앞으로는 두 차례의 구두경고에도 불구하고 불응할 경우 의장의 직권으로 30일 이내의 출석정지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아예 회의장 점거 및 국회기물 파손, 의원간의 폭력 행사 등을 금지하는 국회법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외부인사로 구성된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를 만들어 국회 윤리특위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제 식구 감싸기'를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폭력 의원에 대한 윤리심사나 징계를 요구할 수 있는 요건을 의원 20인 이상의 요구에서 10인 이상의 요구로 완화하자는 의견도 있다.
여야 몸싸움의 빌미가 되고 잇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을 폐지하는 대신 임기 4년제 도입, 본회의 일정 변경 권한 부여 등을 통해 의장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18대 국회에서 폭력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이를 19대 국회부터 적용하는 게 현실적 방안"이라고 말했다.
고성호기자
■ '국회 선진화' 등 개혁입법 난관 첩첩
국회 개혁과 관련한 입법 작업은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한나라당 국회선진화특별위원회(위원장 주성영 의원)가 지난 해 12월3일 논의해 '국회선진화 법안'이란 이름으로 발의한 2개의 제정 법안과 6개의 개정 법안이 논의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를 둘러싸고 여야의 입장 차이가 현격해 입법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을 것 같다.
국회선진화 법안의 핵심은 '국회 회의 방해 범죄의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국회폭력방지법)과 '국회의 질서유지 등에 관한 법률안'(국회질서유지법)이다.
국회폭력방지법은 ▲국회폭력으로 징역형을 받을 경우 의원직 상실 및 10년간 피선거권 제한 ▲국회 내 흉기 이용이나 집단폭행 시에는 받은 형의 2분의 1 가중처벌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국회질서유지법의 주요 골자는 ▲대리투표, 본회의장 출입 방해 및 투표 방해를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국회의장의 경호권 강화(본회의장을 제외한 국회 건물 내 경찰 입장 가능) 등이다.
한나라당이 마련한 국회법 개정안에는 발의된 법안은 15~20일이 지나면 상임위에 자동 상정된다는 신설 규정이 있다. 반대토론의 횟수와 시간 제한을 없애되,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반대토론을 종결할 수 있도록 했다.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제도를 어느 정도 허용하는 셈이다. 또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제한하되, 상임위(180일)와 본회의(60일)에서의 처리 기한을 명시해 법안이 상정된 이후에는 240일 이내에 표결 처리되도록 규정했다. 다만 예산안은 직권상정 제한 대상에서 제외했다.
한나라당은 국회 관련법 개정을 2월 임시국회에서 매듭짓자고 요구하고 있다. 정몽준 대표가 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회선진화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대단히 높기 때문에 바로 논의해서 시행 시기를 정해야 한다"며 "야당의 비판을 고려해 법안 처리는 2월 국회에서 하고 그 적용은 19대 국회부터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한나라당 법안에 대해 "다수당의 일방독주를 보장하는 법안"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강래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은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 일사부재의 원칙을 위반한 데다 지난 해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는 회의장을 변경하며 현행 국회법조차 어기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날치기를 용인하는 법안을 논의할 생각이 없다"고 일축했다. .
민주당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폐지 ▲필리버스터 제도 도입 ▲절차적 하자가 있는 법안의 무효화 등을 골자로 하는 법안 발의를 검토하고 있다. 이 원내대표는 "국회 개혁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소수의 의견이 존중되는 여건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여야의 입법 방향이 정반대이기 때문에 국회 관련법 개정 작업에는 상당한 난관이 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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