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된 현상이 일상을 지배한다'는 시뮬라크르 이론처럼, 2010년 신춘문예의 키워드도 '중복투고'다. 신춘문예 작품 모집에 '중복투고는 당선취소'라는 규정이 있지만 중복투고를 사전에 밝혀낼 방법은 없다. 단지 당선작과 함께 소개되는 심사평을 통해서 중복투고 사실이 뒤늦게 드러날 뿐이다.
중복투고를 하는 투고자는 요즘 TV에서 유행하는 '복불복' 게임을 즐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같은 작품을 대량복사해서 여러 곳에 살포하듯이 뿌려놓고 탈 없이 당선되면 복(福)이고, 들통 나면 불복(不福)인 것이다. 올해 중복투고 발생지가 모두 지역 일간지 신춘문예라는 것도 문제다. 아이러니하게 중복투고 당선자는 그 지역 사람이 아니다. 광주의 모 일간지 시 부문 당선자는 수도권에 사는데 경남과 대구지역 일간지에 같은 작품을 응모했다.
경남의 모 일간지 수필 부문 당선자는 경북에 사는데 부산과 전북지역 일간지에 같은 작품을 응모한 것으로 밝혀져 당선이 취소됐다. 이건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중복투고 사실이 드러나지 않아 당선자의 자리에 앉아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신춘문예는 문학의 신성한 출발이다.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당선이 되고, 문인이 되길 바란다면 그건 창작을 하려는 자세가 아니다. '상금사냥꾼'이라는 비난도 마땅히 감수해야 할 것이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그 어리석음이 안타깝다.
시인 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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