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 첫 출근 날을 엄습한 1ㆍ4 대폭설이 알려준 것은 많다. 눈은 지금도 교통 소통을 방해하고 보행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아니라도 눈길을 걷기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삽시간에 도시를 폐허로 만들고 일상을 망가뜨린 폭설사태를 겪으면서 기상 예보가 좀더 정확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하게 됐다. 기상예보는 최근 자주 틀려 국민의 불평과 비난을 사고 있다.
예보ㆍ제설ㆍ공동체의식 다 문제
대통령보다 2배 많은 연봉을 받는 외국인 기상선진화 추진단장은 오류를 인정하면서도 '인간이 구현 가능한 과학의 한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폭설 예보가 어긋난 게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인데, 그의 말대로 선진국에 비해 초단기 예보가 약한 게 문제라면 그 점을 집중 보완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제설작업 문제다. 서울시를 비롯한 각급 행정기관은 눈을 제때 치우지 못해 뭇매를 맞았다. 100여 년 만의 폭설사태가 속수무책의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눈이 이보다 훨씬 적었던 며칠 전에도 대처를 잘못 해 비난을 자초했고, 그 이후 나름대로 열심히 하면서도 점수를 얻지 못했다. 서울시의 경우 11월부터 3월까지 제설대책본부를 운영하는데, 대부분 눈이 내리기 시작한 뒤 비상을 거는 식이어서 비상령이 제설작업으로 바로 연결되지 못한다. 제설체제를 총 점검하고 대응지침도 새로 만들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공동체의식 문제다. 체인도 감지 않은 채 차를 몰고 나왔다가 아무데나 놓고 간 사람들 때문에 길이 더 막혔다. 양보와 배려를 모른 채 서로 앞을 다투는 바람에 대중교통 승ㆍ하차 때의 무질서가 극심했다. 특히 내 집 앞의 눈도 스스로 치우지 않으면서 제설행정만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아파트에서는 눈을 치우다 지친 경비원들이 "동네 사람들 좀 나와 주세요"하고 방송을 통해 제설 동참을 호소했지만, 별 호응이 없었다. 그들의 낭패는 오탁번의 해학적인 시 <폭설> 을 연상케 한다. 폭설>
서울의 경우 2006년부터 시행돼온 '내 집 앞 눈 쓸기 조례'에 따르면 건축물의 주인과 관리자 등은 보도와 이면도로에 쌓인 눈을 눈이 그친 지 4시간 안에 치워야 한다. 하지만 강제조항은 없으며, 이런 규정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소방방재청은 자연재해대책법의 벌칙조항을 고쳐 지자체가 이 조항을 근거로 최대 100만원까지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강제로 동원하는 것은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과태료 액수도 너무 많아 보인다. 자발적인 움직임을 유도해야 한다.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하다.
네 번째는 공직자들의 자세다. 4일에는 각 기관ㆍ직장에 지각ㆍ결석자들이 많았다. 오전 8시 청와대에서 열릴 예정이던 국무회의는 20분 늦춰 시작했는데도 몇몇 장관이 지각했고, 회의가 끝날 때까지 도착하지 못한 결석자는 더 많았다.
천재지변과 다름없는 대폭설이었으니 지각하거나 결석할 수는 있다. 그러나 꼭 회의에 가야 한다면 승용차에서 내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시민들과 함께 뜀박질하거나 걷는 '출근미담'을 만들어내는 장관이 왜 한 명도 없었을까. 이명박 대통령도 "이럴 때는 지하철을 타면 된다"고 한마디 했지만, 그들은 평소 지하철을 타지 않기 때문에 뭘 모르는 것이다. 그만큼 시민들의 생활에서 멀게 살고 있는 것이다.
저마다 제자리서 잘 대처해야
이 날 오후 3시에는 청와대에서 정ㆍ관계 주요 인사 초청 신년인사회가 예정돼 있었다. 눈 때문에 난리가 나자 청와대는 11시 넘어 행사를 취소했는데, 취소 결정도 너무 늦었다고 본다. 1월 1일에 이미 국무회의를 했고, 4일 오전에 국무회의를 또 했는데, 참석자야 약간 다르겠지만 굳이 신년인사회를 해야 하는가도 의문이었다.
1ㆍ4 대폭설은 재난과 비상사태에 미리 대비하고 저마다 제 자리에서 잘 대응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시험하고 있다. 눈이 아무리 많이 내려도 정신을 차려야 하지 않겠는가. 폭설은 또 내린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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