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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매맞은 시민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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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매맞은 시민의식

입력
2010.01.07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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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폭설은 도시를 마비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애꿎은 시민들을 죄인으로 만들었다. 100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 앞에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했던 시민들은 졸지에 선진 시민의식을 결여한 2등 시민으로 전락했다. 지하철로 몰린 시민들은 서로 떠밀고 떠밀렸고,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은 눈이 25.8㎝나 내린 길에 차를 몰고 나와 도로를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몇몇 언론이 이를 부각시켜 시민들의 질서의식 부재를 질타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 같은 지적은 피상적이다. 문제의 해결책을 개개인의 잘잘못에서 찾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더구나 우리와 사회적 맥락이 전혀 다른 나라의 특정사례를 견강부회해서 비판의 논거로 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선진국에서도 대형재난을 당했을 때 무질서가 초래된 사례는 부지기수다. 심지어 약탈 방화까지 빚어진 경우도 적지 않다.

시민의식은 그 사회에서 시민들이 처해있는 현실과 그 사회의 발전 단계를 반영한다. 몇 년 전 중국에서 내가 보았던 거리의 무질서는 우리의 과거 모습이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은 아마 질서 선진국들이 오래지 않은 과거에 겪었을 법한 것들이다.

우리 사회는 지구상에서 가장 경쟁적인 사회이다.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외견상으로는 선진국과 닮아가고 있지만, 내실은 아직 선진국 문턱에도 못 미치고 있다. 경쟁에서 낙오하면 끝장이다. 그러니 수단방법을 가릴 겨를이 없다. 결과와 효율을 중시하다 보니 편법과 탈법을 눈감아주기 일쑤다.

경쟁이 체질화된 우리들은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계단을 향해 뛴다. 반대 편에선 그 지하철을 놓칠 새라 열린 문을 향해 돌진한다. 그러다가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난다. 100년 만의 폭설이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을 새도 없이 좀더 빨리, 혹은 편하게 가려고 차를 몰고 나온다. 이미 되돌아가기엔 늦었다고 판단한 순간, 엉킨 차들 사이에서 남보다 먼저 머리를 디밀어 한발이라도 앞서 나가려 한다. 그렇지 않고 기다리다가는 영원히 그곳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차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다급해진 사람들은 차마저 버리고 다른 수단으로 직장으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덜 늦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기다리고 남을 배려해서 손해를 보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폭설이 드러낸 우리의 무질서와 이기주의는 그들 몇몇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고, 우리사회의 단면일 뿐이다.

편법이 만연한 사회에선 서로를 믿지 못한다.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다가 자신보다 늦게 온 사람이 먼저 호명되는 것을 보고 지레짐작한다. '빽'을 동원해서 새치기를 했을 것이라고. 그러니 자신 또한 편법으로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항변하게 된다. 상대방의 선의를 믿지 못해 악수(惡手)를 선택하는 '수인(囚人)의 딜레마' 상황이다.

폭설이 빚은 혼란은 우리 모두를 극한의 경쟁으로 내모는 이 사회의 뒷모습이다. 누구를 비난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냉혹한 경쟁사회에 대한 성찰이 우선이다. 그리고 편법과 특권에 기대려는 사람들이 결국 불이익을 받는다는 믿음을 사회구성원들이 갖도록 제도와 법 집행이 달라져야 한다. 그러한 믿음이 없으면 죄인들의 딜레마는 풀릴 수 없다.

김상철 사회부장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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