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복을 입혀야 할까 봐요."
화답하듯 소들이 길게 울었다. 가쁜 숨소리는 덜덜거렸다. 경기 포천시 군내면 하성북리, 축사가 무너져 비닐하우스에 천과 짚으로 얼기설기 엮은 임시막사엔 90여 마리의 소가 있었다.
평소엔 자기구역(3.3㎡)을 철석같이 지키던 녀석들이 동료들과 딱 달라붙어 살을 비비적댔다. 온몸을 파고드는 삭풍을 피할 양으로 바싹 엎드린 놈도 있었다. "음~메" 소리는 하소연하듯 터져 나오는데 목을 축일 물도 얼어붙었다.
내복에 운동복, 그 위에 털잠바까지 받쳐입은 주인(김경환ㆍ58)은 민망한 듯 연신 소들의 등을 쓰다듬었다. 눈딱지가 들러붙은 소 등은 얼음장 같다. 물이라도 마시게 하려고 얼음을 깨보지만 삽도 잘 먹지 않았다.
"17년간 소를 키웠는데 이리 혹독한 추위는 처음이야. 어지간해선 칭얼대지 않는 녀석들인데…." 혹한을 피해 둥지를 버린 산비둘기 30여 마리가 소들의 임시거처에 깃들어 주인의 푸념을 듣고 있었다.
기자가 지닌 온도계의 수은주는 영하 24도(기상청 관측은 영하 23.6도)를 가리켰다. 체감온도는 영하 30도에 육박한다. 전날(영하 24.1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7일 눈과 얼음, 매서운 바람만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경기 포천시는 추위에 강하다는 소들마저도 얼어붙게 하는 그야말로 동토(凍土)였다. 목도리 장갑 부츠 등으로 중무장을 했건만 온몸이 떨리다 못해 들썩거렸다. 한 올, 한 올 머리카락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영하 24도의 위력
그저 폭설만 왔다면 참을만했다. 큰 눈이 내리면 으레 맑은 날이 이어졌던 터라 이번에도 그리 믿었다. 그러나 이번엔 잔인한 동장군을 몰고 왔다. 날이 풀리면 눈이 스르르 녹아 하우스 붕괴만은 막았건만 이번엔 꽝꽝 얼어붙은 눈이 축사와 비닐하우스를 짓누르더니 아예 무너뜨려버렸다.
김경환씨는 "폭설에 이은 한파로 슬레이트지붕이 순식간에 가라앉아 소들이 깔리고 유산하는 피해(2,000만원 상당)를 입었다"라며 "포크레인으로 겨우 임시막사로 옮기긴 했는데 추위를 못 견뎌 해 방한복을 준비할 생각"이라고 했다.
돼지 400마리를 키우는 김모(56)씨는 축사 붕괴는 면했지만 연료비가 세 배 이상 늘었다. "돼지는 금방 감기에 걸리는데 이런 추위는 처음이라 열풍기를 마구마구 틀어주는 수밖에 없다"는 것. 새끼돼지들은 열풍기 곁에 떼로 몰려와 낑낑대고 있었다.
인삼과 야채를 기르는 포천시 영중면과 영북면 일대 농가도 마찬가지였다. 본디 온실인 비닐하우스는 차라리 냉동고라고 불러야 할 판이었다. 안에서 쭉정이를 태워 한기를 쫓아내려고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인삼을 재배하는 양정환(49)씨는 "계약 재배하는 6년근 인삼을 생산하려면 1년을 더 키워야 하는데 다 뽑을 수도 없고 난감하다"고 울상을 지었다. 그는 "한파가 계속되면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하우스가 무너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원구연(50)씨는 예년 날씨(영하 15도대)만 생각했다가 비닐하우스 일곱 동을 다 날렸다. 그는 "이래봬도 20년 농사꾼이라 비닐하우스 안에서 불을 때면 지붕 위에 쌓인 눈이 녹을 줄 알았는데, 웬걸 영하 20도가 넘어가니까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고 푸념했다.
눈이 녹지는 않고 단단한 덩어리가 돼 하우스 측면으로 미끄러지면서 하우스를 무너뜨렸다는 것. 그가 키운 영양부추는 무너진 비닐하우스에 깔렸다. "울화가 치미는데 집에 있는 맥주랑 소주까지 얼었어. 수도관까지 얼어서 80대 노모를 씻기지도 못한다니까."
일상생활도 얼어붙었다
영중면의 마을 입구는 30㎝ 이상 쌓인 눈 사이로 두 줄짜리 바퀴 자국만 어렴풋이 남았다. 들고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인기척을 하고 민가의 대문 손잡이를 밀었더니 꽁꽁 얼어붙어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처마 밑엔 고깔만한 고드름이 아슬아슬 매달렸다. 마을을 둘러보던 최승관(55) 이장은 "얼마나 추운지 머리 속이 지끈거린다"고 했다. 2003년에도 비슷한 추위가 있었지만 이만큼은 아니라고 했다.
수도관이 얼어붙고 보일러가 고장 난 집도 허다했다. 심지어 창고에 보관 중이던 야채와 고구마까지 얼어붙어서 일일이 데워 먹는다고 했다. 마을 주민은 "수도관이 얼어 압력솥으로 밥을 지어 나오는 수증기를 호스에 연결해 녹이고 있다"라며 "바깥에 내놓은 물병이 모두 얼어버려 식수 공급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실제 이날까지 포천시에 접수된 수도 계량기 동파사건은 41건, 자동차 시동이 안 걸려 불편을 겪은 주민들도 30여명이나 됐다. 무너진 축사와 하우스를 챙기느라 동파는 신고조차 못한 이들이 많은 걸 감안하면 피해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포천시청 재난관리과 관계자는 "올 겨울 들어 殮?사흘간 동파 관련 신고가 폭주해 경기도청에서 내려온 한파 대비 공문 등을 각 면사무소 등에 전달하고 있다"고만 했다.
폭설에 이은 혹한으로 경기북부지역 주민들의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었다. 이날까지 18억9,000만원, 그 중 포천이 5할 이상(10억원)이다. 그러나 보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에 등록하지 않고 설치한 비닐하우스나, 규격을 맞추지 않은 시설은 보상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생활이 잔뜩 얼어붙은 것도 모자라 주민들의 마음까지 얼어붙을 상황이다.
강지원 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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