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이 시작되면 부모는 자녀의 키를 키우느라 고군분투하지만 고작 몇 ㎝ 키우는 것도 녹록치 않다. 얼마 전 '루저'파문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이후 키 작은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은 더욱 초조하다. 긴 겨울방학과 곧바로 이어지는 봄방학까지 자녀의 키 키우는 적기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성별에 따라 성장 패턴 달라
아이는 임신되는 순간부터 완전한 어른이 되기까지 계속 자란다. 가장 많이 자라는 때는 출생부터 만 2세까지며, 2차 최대 성장 시기는 여자아이는 11~13세, 남자아이는 13~15세다. 이 시기가 지나면 팔다리 성장은 서서히 멈추고 몸통만 주로 성장하다가 16~18세 이후 차츰 성장을 멈추게 된다.
남자아이는 뼈 나이로 13세 경에 사춘기가 시작된다. 이 시기에는 한 달에 1㎝ 이상씩 자라 성장의 최대 절정기인 15세까지 약 16.5㎝까지 자란다. 15세가 지나면 성장이 약간 더뎌지지만 18세까지 6㎝ 정도 더 자란다. 사춘기에 평균 22.5㎝ 이상 자라는 셈이다. 남자아이는 고환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키가 부쩍 자라고, 겨드랑이와 턱에 털이 생기면서 성장이 점차 둔화된다.
여자아이의 경우 보통 뼈 나이로 11세 경에 사춘기가 시작된다. 이 시기에 성장이 빨라지면서 한 달에 1㎝ 이상씩 자라 성장 절정기인 13세까지 15㎝ 정도까지 자란다. 13세가 지나면 성장이 약간 더뎌져서 16세까지 약 6㎝ 더 자란다. 사춘기 때 20㎝ 이상 자라는 셈이다. 여자아이는 가슴이 나오면서 사춘기가 시작돼 겨드랑이에 털이 나타날 즈음 성장이 느려지고, 초경 이후 3~5㎝ 정도 더 자란 후 성장을 멈춘다.
2차 성징 빠르면 모두 성조숙증?
여자아이의 경우 8세 이전에 유방 발달이 시작되고, 남자아이의 경우 9세 이전에 고환이 커지면 성조숙증일 가능성이 높다. 성조숙증 아이는 또래보다 체격이 큰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성호르몬 분비가 늘어날수록 성장판이 빨리 닫히므로 키가 자라는 기간이 짧아져 오히려 성장 후 키는 더 작다.
성조숙증 원인은 매우 많다. 의원성 성조숙증(외부에서 유입되는 호르몬으로 인한 조숙증)은 주로 강장제, 성분불명의 한약재, 로션크림 등을 우발적으로 먹거나 바르면 나타날 수 있다. 최근 유사 에스트로겐으로 알려진 환경호르몬이 의원성 성 조숙증을 유발하고 아이의 키 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특히 사춘기 이전의 어린이는 외부에서 유입되는 성 스테로이드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2차 성징이 빨리 나타난다고 모두 성조숙증은 아니다. 정상적인 사춘기 발달과정에서 나타나는 조기 유방 발육증이나 조기 음모 발생증, 조기 초경 발생증인 경우에도 2차 성징이 조금 빨리 나타날 수 있으므로 전문의 진단을 받아야 확실히 알 수 있다. 간혹 2차 성징이 시작되면 성장을 멈춘다는 생각에 얽매여 생리억제제를 남용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성장은 호르몬 분비뿐만 아니라 성장판상태, 영양상태, 만성질환 등 여러 가지 요인에 좌우되고 생리를 시작한 이후에 한동안 성장판이 열려 있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사춘기 전에 미리 검사를 받아서 키 성장에 방해가 되는 요인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좋다.
무분별한 성장호르몬, 득보다 실 많아
같은 나이 100명의 어린이 가운데 가장 작은 3명 안에 들어가면 저신장증으로 분류하며, 이 경우 성장호르몬 투여를 고려해 볼 수 있다. 성장호르몬은 뼈가 자라고 있는 동안, 즉 사춘기가 끝나기 전에 투여해야 효과를 볼 수 있으므로 가급적이면 성장판이 닫히기 전인 8~10살 전후가 적당하다.
성장호르몬 주사는 성장호르몬 결핍증 환자, 만성 콩팥병으로 키가 작은 경우, 터너증후군(여성 성염색체에 이상이 있는 병)일 때에만 효과가 확실하며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 외에는 보험혜택을 받지 못해 1년에 700만~1000만원 정도 비용이 든다. 게다가 성장호르몬을 투여한다고 해서 키가 쑥쑥 자라주는 것은 아니다. 성장호르몬 효과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성장호르몬을 맞을 때는 많이 크다가 맞지 않으면 성장속도가 줄어 원래 자랄 만큼만 자라는 경우도 있다.
정상적인 자녀에게 성장호르몬을 투여하면 성장에는 별 도움이 안 되고 골다공증만 일으킬 수 있다. 박수성 서울아산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는 "성장호르몬과 키 성장에 관한 과학적인 자료가 아직은 많이 부족한 상태라서 성장호르몬을 적극적으로 권하기는 어렵다"며 "현재로서는 가장 좋은 것은 운동과 식이요법"이라고 말했다.
키가 크고 몸이 튼튼해지려면 운동이 필수다. 운동은 성장판을 튼튼하게 해 뼈와 근육을 자라게 할 뿐 아니라 성장판 주위의 혈액순환과 대사활동을 늘려 자녀의 성장과 발달을 촉진한다. 성장에 가장 효과적인 운동은 팔다리 관절을 펴주는 스트레칭이다. 스트레칭은 성장판 가까이 있는 관절과 근육을 자극해 성장판 주위의 혈액순환을 촉진해 키가 크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
아침저녁으로 10분 정도 형식에 구애 받지 말고 근육과 뼈를 펴주는 동작을 하면 된다. 이밖에 성장에 도움 되는 운동은 줄넘기, 가벼운 조깅, 맨손체조, 수영, 댄스, 배구, 테니스, 너무 과격하지 않은 농구, 단거리 질주, 배드민턴 등 비교적 가벼운 운동이다. 반면, 기계 체조, 역도, 씨름, 레슬링, 유도, 럭비 등 무거운 물체를 드는 운동과 지나치게 체력을 쓰는 운동은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해 오히려 키 크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성장기 과도한 영양, 과유불급
키 성장을 위해서는 균형 잡힌 식단도 매우 중요하다.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생선과 리신, 철분, 아연이 많은 소고기, 비타민 B1과 비타민 A를 함유한 돼지고기와 닭고기 등은 키 크는 데 도움을 주는 대표적인 식품이다. 필수아미노산이 모유 다음으로 많은 달걀과 무기질과 단백질이 풍부한 버섯도 성장에 좋으며, 비타민 C가 풍부한 귤, 성장호르몬을 촉진하는 아미노산이 풍부한 키위, 식이섬유가 풍부한 사과 등도 성장에 도움 된다. 칼슘과 단백질, 철분이 풍부한 우유나 두유도 많이 마시면 좋다. 이 밖에 칼슘과 무기질이 많아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 하는 해조류와 베타카로틴과 비타민이 많이 함유된 시금치, 브로콜리, 당근 등도 성장에 도움된다.
제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편식과 과식은 금물이다. 콩은 성장에 좋은 음식이지만 식물성 여성호르몬인 이소플라본이 함유돼 있어 과다 섭취하면 조기 성숙이나 성조숙증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 두유도 여자아이의 경우 1주일에 1회 정도 40g 미만으로 섭취하는 것이 좋다. 우유는 하루 600㎖ 정도가 적당하다. 우유에는 포화지방산이 다량 함유돼 있어 비만을 유발할 수 있고, 1리터 이상 마시면 철분 흡수를 방해해 '철 결핍성 빈혈'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또 조개류와 새우, 오징어, 젓갈 등 콜레스테롤이 많이 든 음식도 성장에 좋지 않다. 사골국도 성장을 해치는 음식 가운데 하나다. 사골은 대부분 콜라겐 지방이며, 칼슘 흡수를 방해하는 인도 다량 함유해 어린이 비만을 유발하고 사춘기를 앞당기며 성장에 해가 될 수 있다. 살찌면 성장호르몬이 키가 아닌 지방을 태우는 데 집중적으로 쓰이므로 키를 키우려면 체중조절은 필수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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